연중 26주일미사. 아모스 6,1-7;티모테오1서 6,11-16;루카 16,19-31
새해 정초를 맞이하면서 우린 서로를 위해 이런 인사를 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나서 9개월이 흘렀습니다. 9개월간 별별 일이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복, 어디 갔습니까? 분명 뭔가 자그마한 것이라도 받기는 하셨을텐데요.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그 복을 받기만을 원하지, 막상 받고나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다는 사실을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에 자기만을 위해 쓰기 바쁩니다. 여기서 복(福)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 지에 에 대해 보게 됩니다. 재미있게도 이 복(福)이란 것은, Keeping 이 되지 않습니다. 적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들어오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저 쓰기에 바쁩니다. 복이 생기면, ‘나중, 미래, 영생’ 은 나중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생기면 소비하기에 바쁩니다. 여기서 복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1독서에 나옵니다.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없이 사는 자들.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떼에게 고른 어린 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 먹는다. 수금가락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낸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복을 소비하기에만 바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가 아브라함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얘야 너는 살아있는 동안에 좋은 것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는 자신의 복을 자신의 영화로운 삶을 위해 소비했습니다. 라자로를 알고 있었어도 그는 무관심을 보였으니까요.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현세에서 지금까지 받은 복을 과연 복이라 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부자가 복을 받았지만, 저승에서는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이런 답변을 듣습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모세와 예언자는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그럼 이 교회의 가르침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예전에 어떤 교우에게 이런 질문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잘 믿는 신자들이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받는 그런 심판은 받지 않겠지요?’ 그 확고한 믿음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믿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으리라는 믿음이 저는 더 조심스럽게 보였습니다. 분명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방식은 우리와는 다르게 이뤄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이미 당신과 관련을 맺으며 복을 받고 있는 상태이기에 그 복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심판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나오잖습니까?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이젠 우린 받은 복으로 인해 좋은 날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위험에 처할 상황에 놓여 있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2독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칭찬을 받으며 살고 싶어합니다. 칭찬. 좋은 소리 해준다는데 이거 싫어할 사람 없지요. 하지만 칭찬이란 사람에게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칭찬만을 바라면, 주님에게서 더 배울 것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훌륭히 싸우라’ 는 표현은, 부족한 나의 신앙을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세상 안에서 계속 확인받고 점검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처음에는 틀리고, 실수하고, 잘못되는 것, 투성이지요. 하지만 꾸준히 받은 복을 어떻게 써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들여다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부지하고 살아남아 있을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회의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