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간 수요일
질문 하나 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신앙은 예전보다 새롭게 나아가야 합니까? 비록 십자가의 고통은 있었지만 고통만 바라보지 말고 그 곳에서 말하는 말로 다 표현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겨 계속 하느님의 새로운 면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까?
여러분이 그러하다고 답변 하셨기에 지금부터 우리 성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새로운 주임 신부님이 오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분들이 자기만의 생각 속에서 기대를 합니다. 그 기대는 미래에 대한 기대일 수도 있지만 다른 방향의 움직임도 보입니다. 그 움직임이란, ‘옛 것에 대한 회귀, 돌아가려는 움직임’입니다. 몇몇 진영의 계신 분들은 신부님이 바뀌시니까 이런 것을 시도하려 합니다. ‘전(前) 신부님이 이러이러한 것을 못하게 막았거나, 없애셨는데 이번 신부님은 그런 것을 다시 살려주길, 예전 것이 이뤄지도록 허락해주시길..’ 말이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기억하는 그 신부님은 어떤 분이겠습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방해한 신부님’ 이란 글자가 머리에 박혀있겠지요. 그로 인해 여러분의 것이 꺾이고 좌절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것이 피어나고 있는 현장은 보지 않으셨습니까? 일련의 이런 사항을 쭉 지켜보면서 저는 이런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신부님들이 바뀌면서 양들을 위해 새로움을 가져다주어도 여러분은 새로움이 주는 메시지는 보지 않은 채, 그저 ‘내가 해 왔던 것이 좌절되었구나’ 만 본 것이지요.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좌절을 하면서 구약에서 예언한 것들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것처럼 말이지요. 앞으로 교회가 살아있는 한, 신부님은 계속 새롭게 오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뭔가 주님의 새로운 면을 선사하시겠지요. 그러나 지금처럼 ‘저희를 그냥 놔두세요. 저는 그저 예전 것이 좋아요’를 계속 외치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저는 솔직히 누구 편도 아닙니다. 편을 고르라면 주님과 교우 여러분의 편입니다. 어떠어떠한 신부님 개인 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만 그 신부님 안에 있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지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은 땅에 심겨져 죽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의 ‘죽은 현장’ 만을 보지 말고, 거기에서 피어나고 있는 그 무언가를 보시는 여러분이 되길 희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