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십자가 현양 축일

2013. 9. 14. 오후 3: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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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십자가 현양 축일

 예전 3권까지 출판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쓴 '나자렛 예수'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중 두 번째 권의 '십자가 예수' 장에는 이런 글이 써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의 첫 번째 말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릅니다.(루카 23,34) 주님은 증오를 모르신다. 그분은 복수를 외치지도 않으신다. 그분은 당신을 십자가로 이끈 이들을 위해 용서를 청하시고 이 용서의 이유를 제시하신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릅니다."

 이러한 무지함은 베드로 사도가 솔로몬 주랑에서 한 설교에도 나옵니다. 베드로는 불구자를 치유한 후, 예수님을 우리들의 손으로 죽였다는 설교를 하면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라고 했고요. 바오로도 사도들을 잡아들인 것이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실 이런 말은 하기 힘든 고백입니다. 스스로를 참된 율법학자로 자처하고 있던 그 스스로 무지했다고 인정하는 꼴이니까요. 이런 비슷한 요소는 예수님의 탄생 때도 그러했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날 지 알고 있었지만, 실은 알면서도 눈 먼 채 했습니다. 즉 박식함과 무지함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의 눈이 감겼을까요?

 우리가 더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도 '내가 뭔가를 알고 있다' 고 생각하는, 그 지식 때문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듭니다. 물론 알지 못하고 지은 죄는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의도했던 죄보다 열려있지만, 무지함 때문에 회개로 가는 길이 막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무지함은 진리의 요구를 거부한 우리 마음의 무감각함을 표시하고 있는데요. 우리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요. 모르면, 더 알고파 무언가 알려고 시도하는 이들이 있고요. 또는 모른다고 그냥 덮어버리는 사람도 있고요. 그리고 무엇이 모르고 아는 것인지 조차 관심 없는 이도 있습니다. 

 이렇듯 십자가는 어떻게 보면 당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우리들의 무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무지함이 있었기에 우리를 회개로 인도해주는 문이 되어줍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더 이상 피하거나 할 것이 아닌, 우리를 위로해주는 원천이 되어줍니다. 그동안 교회를 재미삼아 다닌 사람들이 있어왔습니다. 좋은 말씀 듣고, 사람들과 좋은 유대관계 맺고.. 헌데 그런 것은 가짜지요. 불편한 것을 그저 피하려고만 들었습니다. 이곳은 십자가의 신비를 마주대하여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것을 어떻게 여겼을까 봐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더 깊이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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