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13. 9. 16. 오후 8: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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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열왕기 하권 5장에 보면 엘리사 예언자가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을 고쳐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병을 갖고있던 그가 병을 고치려 이스라엘에 당도하였을 무렵, 엘리사가 직접 가서 치유시켜주지 않고 심부름꾼을 보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 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나아만을 화를 냅니다. 자기 생각에는 엘리사가 직접 와서 하느님을 부르며 상처난 곳을 만져주려니 싶었는데 그냥 심부름꾼이 와서 몸을 닦으면 된다고 말하니 이거 대접이 뭐 이러냐?’ 싶었겠지요. 과연 엘리사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그런데 복음에서 백인대장은 나아만과는 반대의 입장을 보여줍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 백인대장의 진짜 속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조선 후기 숙종 시절의 병과에 급제했지만 글쓰기에도 능했던 약산 오광운 이란 사람이 자기 아들에게 내려준 훈계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교만을 멀리해라. 교만은 무언가 결핍된 것을 보상 받으려는 심리에서 나온다. 교만이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는 허세일 뿐이라면, 이보다 슬픈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 나아만은 자기 병만 나으면 그 뿐입니다. 어떤 대접? 형식? 이런 거 필요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엘리사가 직접 가서 해 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뭔가를 바랬던 모양입니다. 어떤 대접을 받으면서 말이지요. 요즘 큰 병원에 가보면 의사, 간호사의 숫자보다 안내, 서비스 요원이 많아졌습니다. 대접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게 병이 낫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여기서 독서의 이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일입니다.”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아하신다는 뜻일까요? 한가위를 맞이하여 효도에 대한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이 효도라는 것이 자식된 입장에서 효도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즉 부모님의 생각과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저 내가 해드리고 싶은 효도방식은 오히려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릴 뿐이라는 말이지요. 신앙도 그렇습니다. 내 방식대로 주님을 대하는 태도보다는 하느님이 마음에 들어하는 방식으로 다가갈 때 그분이 좋아하실 것입니다. 기념일을 맞이하는 성 고르넬리오와 성 치프리아노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방식인 순교를 택하였습니다. 백인대장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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