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간 목요일. 콜로새서 3,12-17; 루카 6,27-38
사람은 살면서 많은 것을 만납니다. 좋은 것, 나쁜 것, 옳은 것, 그른 것, 영원한 것, 유행 타는 것 등 말이죠. 집안에 가만히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여러 매체 등을 통하여 나의 시각과 생각을 잠시 잡았다가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집안에만 있는 사람도,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곁에서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계속 만난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 가운데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스쳐 지나가는 것들 속에서 ‘하느님의 기운을 느끼는 것’ 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짧은 단문 같은 이야기들의 연속입니다.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 해주고, 네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그러면서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시고 싶은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사랑하라” 이지요. 물론 사랑..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몰라서 안 하겠습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대충하는 선에서 멈추기도 하고, 누구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말처럼 쉽게 할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모두들 바로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란 것이 이미 하느님에게서 받아두었는데 실제로는 우리 안에 숨겨져 잘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숨겨진 무엇을 찾아야 하는 사람은, 그 무엇이 숨겨진 그곳까지 들어가야만 합니다.’ 즉 우리의 영혼의 밑바닥, 영혼의 실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는 하느님이 현존하십니다. 자신 안으로 들어갈 때, 밑바닥까지 내려가 바라볼 때, 그때 나는 나 자신에게 머물려고, 나 잘 되려고 내려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건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지요. 독서에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시오.” 기도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소원을 빌지만, 결국에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하겠습니다. 그저 스쳐지나가지만 말고 더 밑으로 내려가 볼 때 이미 라느님이 주신 사랑의 본 모습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