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신명 34,1-12;마태 18,15-20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난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마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분부터,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류의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들은 고집이 세구요. 배운 것도 많지 않아 그런 지,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은 무릇 자신을 들여다보고 반성하고 그러면서 자신을 점검하는 속에서 미래를 봅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그럴 여유마저 가지기 힘들지요. 이들의 삶은, 발바닥에 쩍 하니 붙는 비닐장판처럼 현실과 붙어살아야 하니까요. 당연히 이런 분들을 만나면 가까이 하기 힘들어 합니다. 말도 잘 안 통하니까요. 이럴 때 대다수 분들이 쓰는 방법은 바로 ‘무시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아무리 잘 해줘도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고, 갚을 생각도 안하니까요. 동정이나 가엾은 마음에 뭔가를 해주지만, 이런 것을 우리가 말하는 ‘사랑’ 이라는 단어까지 쓰기는 조금 부족합니다. 물론 그것마저 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영역에 한해서만 해주는 것이 대부분이니까요.
복음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지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기도를 하는 사람들일까?’ 를 봐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살펴볼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행동하였던 그런 작은 범위의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이 콜베 신부님의 의 전기문을 쓴 마리아 비노프스카는 일화를 하나를 소개하며 그것이 전기를 쓰게 된 동기라고 머리말에서 밝힙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친구 피에르가 절망에 빠져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 도전해왔답니다. 『살육이 자행되는 강제 수용소 안에서도 성인이 있단 말인가? 진정 성인, 자신보다 이웃을 더 사랑한 성인이 있다면 내게 보여달라!』. 이에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 대신 아사 감방에 들어가 죽은 콜베 신부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그 친구는 그분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인간성을 재발견하면서 하느님을 다시 찾았고, 끊어졌던 신앙의 유대를 회복하게 되었다는데요. 우리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사랑을 벗어나야겠습니다. 그런 한계를 넘을 때, 비로소 신앙의 기적의 힘이 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