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월요일. 민수 11,4-15;마태 14,13-21
‘작은 것 하나에도 당신의 발자취를 볼 수 있다면, 스쳐지나가는 바람 안에서도 당신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작은 우리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과 딱 붙어있지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그것에 메어있습니다. 물론 이유는 간단합니다. 살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그 살기 위한 것이라는 말 안에서, 오히려 슬픔을 느낍니다. 당장에는 목숨을 부지했을지 몰라도,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여겨보지만... 돌아보면, 오히려 당신과 멀어져 있었던 삶이라는 것을 보게 되니까요.
현실에서 헤매는 우리들의 모습을 오늘의 말씀에서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인물들은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줄까?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하며 예전 먹던 음식을 그리워하고 있고, 복음에는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는 사실 속에서 그 많은 군중들의 기쁨이 느껴집니다. 물론 좋은 일입니다. 사실 우리 성당도 음식을 풍족하게 장만하는 잔치를 좋아하고, 자모회원들도 아이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음식 봉사를 잘 해주시며, 게다가 동네에는 식당이 넘쳐납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성당이 시장 같습니다. 사람도 많고, 분위기도 좋고, 그래서 모르던 사람들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만, 그런 행사를 생각보다 자주하지 않는다는 알게 되어서인지, 곁에서 같이 먹던 그들이 어느샌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저는 여기서 이런 말씀이 떠오릅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라고요. 현실에서 받는 복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 복은 매개체 역할을 하지요.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게 말입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하느님보다는 매개체만 좋아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주저앉지요. 그것만 들여다 보면서요. 마치 내일 있을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에 나오는 베드로처럼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현실에 주저앉아 버리는 순간, 우리는 그분이 왜 빵을 많게 하셨는지, 만나와 메추리는 왜 주셨는 지에 대해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현실을 부정하자는 차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보물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평범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서 주신 선물의 의미를 알아차릴 때 나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