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

2013. 7. 22. 오전 1: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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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

우리는 매일을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꿈일수도 있고, 뭔가 재미있는 꺼리일 수도 있고, 그저 어제보다는 나은 하루일수도 있습니다. 매일을 여행하듯 살아가는 우린, “나는 주님을 찾습니다.” 라는 성가처럼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어디 계실까요?

이 미사가 끝나게 되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님의 모습은 이제껏 보았던 빵의 형상도 아니고, 멋진 성화 그림처럼 생기지도 않았으며, 그야말로 생생한 현실에서 당신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린 생각보다 그 분을 잘 찾지 못합니다. 마치 오늘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을 보았어도 주님인줄 알아뵈지 못했던 것처럼 그렇게 눈 앞에서 보고도 헤매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가 생각한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비록 다른 것을 보고 있더라도, 거기서 이미 자신이 보아오던 것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분명 둘은 다른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만 거기서도 비슷한 부분은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테니스 선수들이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면서 가장 경제적이며 우수한 폼을 만들어야 공을 원하는 방향에 강하게 보낼 수 있는 것처럼, 스포츠와는 다른 음악방면의 연주가들도 곡을 연주할 때, 이렇게 하지요. 손에 불필요한 힘을 뺄 때야, 더 느낌이 좋고 오랫동안 연주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서로 분야는 다르지만 뭔가 공통되는 것을 볼 줄 아는 자세이지요.

자 이제 이것을 현실에 적용해 본다면, ‘예수님이 지금 이 곳에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분은 참으로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마치 그분의 모습이 숨은 그림찾기처럼 보일 듯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평소 나의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다룰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 민첩한 감각은 예리한 칼날이 되어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라는 증언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맙게도 먼저 나의 눈을 열어주시는 분은 주님이지만, 그것도 제대로 된 응답이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당신을 찾아 뵈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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