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간 금요일. 창세 46, 1-30; 마태 10,16-23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한 첫 조건 중에 하나는 “관찰”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이웃들의 상태를 잘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제대로 된 관찰은 하지 않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쿵저러쿵 지금 이 순간만을 놓고 판단을 하기에 정작 그 사람을 도와주지 못하는데요. 인생이란 게, 지금 좋다고 마냥 좋고, 지금 나쁘다고 마냥 나쁜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다수가 이런 오류를 범합니다. 당연히 조각만 보고 하는 행동이기에 설익은 것 마냥 되기 쉽지요.
오늘 독서를 한 번 보십시오. 넓게 바라보겠습니다. 하느님이 야곱을 부르시며 이집트로 가서 살랍니다. 아들 요셉도 만나고 좋지요. 그런데 좀 지나 어떻게 됩니까? 요셉의 치적을 모르는 왕이 등극하자,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로 전락합니다. 그러다 모세를 통해 가나안으로 가게 되어 자유를 얻습니다. 그러고 잘 살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솔로몬 이후 남, 북 이스라엘로 갈립니다. 복음도 보십시오.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복음의 기쁨도 있지만 전하면서 얻게 된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교회가 이나마 많게 되어 편안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렇다고 편안하게 계속 지속되고 있느냐? 아니지요. 신자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문제가 있는 신자도 생깁니다. 그럼 이제 뭐가 보입니까? 이제 좋고 나쁘고 따지기 힘들어집니다. 마치 롤러 코스터 마냥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의 연속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잘 관찰하다보면, 이것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 보이는데요.
자기 자신이나 다른 이들을 바라볼 때도 이러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만을 보면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기보다, 지금 이것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가를 바라볼 때, 서로를 바라보는 힘도 생기고 주님이 뜻하심도 보일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