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기념일

2013. 6. 21. 오후 3:00:55

글자

연중 제 11 주간 금요일. 고린토2서 11,18-30;마태오6,19-23

우리는 살면서 남들에게 무언가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자랑하기도 하고, 나의 자녀들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랑거리는 더 이상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그것들이 나를 드러내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 바오로는 고생했던 예전 자신의 이야기를 훈장처럼 얘기합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그냥 바리사이로 편하게 지낼 수도 있었던 그가, 이런 고생을 하며 살았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의 약함과 어려움 속에서 주님의 뜻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20세기에 나온 발명품들이 사람들의 생활을 편하게 해 주기는 하였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는 빼앗아 가버렸다고 말입니다. TV, 계산기, 핸드폰, 네비게이션까지 말입니다. 생각하고 사고하고 판단하기보다 이런 것에 의지하다보니 편한 반면에 결국 내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를 잊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 몸도 어두울 것이다.” 바오로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겠다는 이야기도, 자신이 강할 때는 발견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약한 상태에서는 주님의 힘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주님의 은총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는 흑사병이 만연한 시대에 도망가지 않고 나서서 환자들을 돌보다 돌아가십니다. 그 분이라고 위험이 뭔지, 전염이 뭔지 몰랐겠습니까? 모두가 피할 때, 오히려 더 깊숙이 들어가 한 사람이라도 보살펴 주는 모습 속에서 진정한 사랑이 뭔지를 알게 해줍니다. 편할 때는 몰랐던 것들을 어려울 때에야 아는 모습 속에서 가끔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에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도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남들이 말하고 있는 자랑거리에 휘둘리기보다 곰곰이 묵상한 가운데 나오는 실천꺼리를 결심해 나갈 때, 나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을 사용하면서 마치 내가 만든 것처럼 착각하며 즐기기보다, 이제 내가 결심한 사랑의 실천꺼리를 하나하나 해 나갈 때, 나는 바오로처럼 나의 약함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며, 나의 부족한 면이 눈이 떠지면서 더 나은 나 자신을 나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때는 남이 칭찬해주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