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주간 수요일. 고린2서 3,4-11;마태 5,17-19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여러 기구들이 있어야 빛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필기구나, 컴퓨터가 있어야 남에게 그걸 보여줄 수 있고, 미술가는 그림을, 음악가는 다룰 수 있는 악기나 악보가 자기를 보여줄 수 있는 도구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은 무얼 보여주어야 할까요? 통장이나 땅문서를 들고 보여주는 사람도 아니고, 어떤 자리에 있다고 명패나 명함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여기서 ‘나’ 라는 사람 자체에서 힘이 나오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것에 의지해야만 그 힘이 나오고 있느냐? 를 만날 수가 있는데요.
예수님의 특징은 그 분 자체에서 힘이 나오는 분이셨습니다. 즉 쉽게 말해 다른 덧붙여지는 것이 필요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런 분이시기에 얼핏 보기에 예수님은 그 전에 사람들이 배운 것들과는 좀 다른, 독특한, 파격적인 모습에 오해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그 분 자체에서 나오는 힘은 하나하나 쪼개진 것이 아닌, 실제로는 통합의 모습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이런 것입니다. 우린 현재 7성사의 중요성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경 안에서 7성사라는 것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떠나신 후 그동안 말씀하신 것을 따져보고 모으다 보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선물을 일곱 가지 성사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교회 안에서 실현하고 있습니다. 그 성사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즉 세례부터 병자성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전 생애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주님은 이미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정리는 우리가 해야 하겠지요.
오늘 바오로는 이야기 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만약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들이 다만 글자로 만들어진 규정으로만 본다면, 그 가르침은 죽은 가르침일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가르침은 각각의 조항이 아니라,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에, 성령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는 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사람들처럼 여타의 기구가 필요없이 당신 스스로 당신 자신을 나타낸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우리도 당신 안에서 그런 모습이 나와야 하겠습니다. 신앙인은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드러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