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주일 미사

2013. 6. 9. 오전 12: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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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0주일 미사.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신기하고 좋았던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조금 있으면 신부님이 되니까요? 아닙니다. 그건 7년이나 지나야 하니까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여자 없이 남자끼리 지내니까 마음이 맞아서요? 와일드한 남자끼리 무슨 마음이 잘 맞았겠습니까? 당장에 신기했던 일은, 서울이라는 한 지역에 강동, 강서, 강남, 강북민들이 한 곳에 모여서 서로 다른 생각들을 털어놓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이 곳에만 사셨던 분들은 모를 수 있지만, 같은 서울이라도 동네에 따라 사고방식이 너무나 다양하고 다르다는 것이 참 재밌으면서도 신기했는데요. 처음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던 것이 알고 나면 ‘아~ 그런 배경이니 가능하겠구나~’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신학교에 들어가면 ‘라이프 스토리’ 라는 것을 씁니다. 이른바 성장배경과 부르심을 받았던 경위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이것도 재미있습니다. 성장배경은 부모님이나 살았던 동네가 다르니까 다를 수도 있는데, 성소동기도 그야말로 인간극장이니까요.

  오늘 2독서에는 바오로의 개인사가 나옵니다. 한 때 유다교에 있으면서 남을 박해하던 사람이 갑자기 계시를 받았으니, 누가 쉽게 상대해 주겠습니까? 사도들을 잡아다 넘긴 전력이 있던 그를 피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그걸 본인 자신도 잘 알기에, 베드로를 만난 후 “다른 사도는 아무도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보았을 뿐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도들과 함께 해야 전교가 가능할 것 같았지만, 주님의 섭리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외국인들을 선교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똑똑한 머리와 로마 시민권을 가진 그로서는 그게 맞았을 것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행할 줄 알 때, 나의 본래 모습을 찾는 시작이 됩니다. 비슷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프랑스의 슈브리에 신부는 프라도라는 재속 사제회를 창설할 때 건물을 하나 매입합니다. 그 곳은 ‘프라도’ 라는 이른바 춤추는 나이트 클럽이었습니다. 우리 동네도 그런 곳이 있습니다만, 그런 곳은 불량한 사람들이 오게 마련이고, 동네 분위기도 어수선합니다. 하지만 그 곳을 매입하고 이름도 ‘프라도’ 라는 이름을 계속 쓰면서, 과거 춤추던 곳을 이젠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사업의 장소로 만듭니다. 그 이후 동네는 달라집니다. 동네는 같은 동네, 장소도 같은 장소였지만, 무엇을 세우고 사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마치 바오로의 회심이 그의 인생에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로 달라진 것처럼 말이지요.

 

오늘 1독서와 복음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내용입니다. 내가 부활하여 살고 싶다면 진짜로 죽어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나의 어떠한 면을 죽여야 할까요? 예전의 잘 나가던 추억에만 머무르는 자세, 하느님이 주셨던 과거의 여러 체험들에서 벗어나야, 나는 예전의 나이지만 그저 과거의 내가 아닌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믿기 전 상황과, 믿고 난 이후의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게다가 믿고 난 이후에도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가 뭔가 달라졌는지를 또 바라보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린 영원히 사는 것이 어떤 지를 알게 됩니다. 영원한 삶은 그저 죽고 난 이후의 천당의 삶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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