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7주간 토요일. 야고 5,13-20;마르 10,13-16
예전 본당에서 봤던 일입니다. 복사들이 미사가 끝나면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서로 무엇을 옳았고 틀렸는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집니다. 즉 ‘이 때 어떤 자세를 했어야 했다.’ ‘ 이 때에 종소리가 울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등등에 관하여 서로 지적을 하느라 바쁘십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나름으로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배운 데로 해야 한다’ 는 가르침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는데요.
오늘 말씀은 이러합니다.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배운데로 순수하게 하려는 마음이 그들을 살리는데요.
다산 정약용이 이런 소리를 말을 합니다. ‘천하에는 두 가지 저울이 있다. 하나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비요, 다른 하나는 이로움과 해로움을 따지는 이해다. 여기서 4가지 삶의 등급이 나오는데 옳은 일을 해서 이롭게 되는 것이 첫째요, 옳은 일을 하다가 해롭게 되는 것이 둘째, 그른 일을 하여 이롭게 되는 것이 셋째, 그른 일을 하다가 해롭게 되는 것이 넷째다. 사람들은 그른 일을 해서라도 이로움을 얻으려고 하다가 마침내 해로움만 불러들이고 만다. 그러기에 첫째는 드물고 둘째는 싫어, 셋째를 하다가 결국 넷째가 되고 만다.’ 옳은 것을 얻기 위해 올바른 방법을 사용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결과만 좋으면 그만입니까?
당신은 우리에게 분별할 수 있는 힘을 주셨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내가 세운 규칙에 갇혀버리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분명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질서’ 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참다움을 얻겠다고, 오히려 그른 방법을 갖다가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한답시고 오늘 어린이들을 막아서는 제자들을 보십시오. 더 큰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당신이 주신 지성과 분별력은 다음 차원을 넘어가 미래를 볼 줄 아는 경우로 발전이 되어야만 합니다. 갇혀버린 지성은 우리를 메마르게 만듭니다. 어린이 자체는 약하지만, 자기들의 약함을 알기에 하느님께 더 귀를 기울이듯이, 우리들의 영성도 그런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