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목요일

2013. 5. 11. 오후 2: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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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6주간 목요일.

교리를 하다보면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어떤 분은 질문꺼리가 많은데 어떤 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쭤봅니다. ‘뭐 알고 싶으신 것 없으세요?’ 그러면 날아오는 답은 이렇습니다. ‘뭐 아는 게 있어야지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질문꺼리가 없다. 이 말은 한편으로 옳은 대답입니다. 자신이 뭔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는 질문을 할 수 없습니다. 즉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뭔가를 모르고 있다’ 는 사실을 알아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안타까움도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알고 싶어하는 절실함은 과연 갖고 있었던가?’ 하고요.

오늘도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질문합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린 압니다. 그 답은 승천과 재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이들의 간절한 물음에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라는 원하는 답을 얻어냅니다. 예로부터 많은 가르침이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관심있는 부분만을 찾습니다. 재미있는 것만 골라냅니다. 그러나 그렇게 체로 걸러내다 보니, 정말 알아야 할 것들을 놓친 적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독서에 회당에서 바오로는 우다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얘기 합니다. 그러나 그를 반대하는 이들이 생겨나자 바오로는 이런 말을 던집니다. “여러분의 멸망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민족에게로 갑니다.” 왜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에 주님의 기도만 가르쳐 주셨을까?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직은 우리가 그만큼 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리의 문에 들어가려면 더 열려있어야 합니다. 큰 홍수가 갑자기 다가오더라도 그 물을 받아들일만한 저수지 같은 수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직 주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면 당신을 탓하기보다 내가 더 당신을 알고픈 절실한 마음이 열려있었나 봐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봉헌된 나의 모습이 나를 살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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