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5주일 미사.
우리 신앙의 특성은 온통 사랑이야기입니다. 구약시절 하느님이 주신 계명도 하느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귀결되고, 오늘 주신 새 계명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만나야 할 사랑은 어떤 사랑이겠습니까? 그 방법을 알기 전에 우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금지되는 사항을 안다면, 참된 것만 남으리라 여겨집니다. 여기서 사랑을 위협하는 4가지의 위험을 말하겠습니다.
첫째로는. 권태감입니다. 어떤 사랑도 권태감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즉 어떤 것에 대해 더 이상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면, 권태감은 사랑을 파괴합니다. 친구사이에 더 이상 교류가 없으면 그 우정이 메말라 버리듯이, 부부사이에 참된 대화가 없으면 남보다 못한 남의 편이 되어버리듯이, 서로에 대한 상상력과 창의력의 샘이 고갈될 때, 언제나 권태감은 생기게 됩니다.
둘째 위협은, 지나치게 활동중심인 것입니다. 즉 바쁜 사람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이 지속적으로 일에 빠져있거나, 일터로 도망가 버리는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없을뿐더러 다른 이의 친구가 되어줄 능력도 함께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랑은 서로에 대한 개방성이 요구합니다. 헌데 자신의 감정이 현재 활동으로만 채워진 사람에게는, 어느 무엇도 그것을 뚫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당연히 더 이상 나눌 수 있는 것이 없는 이에게는 친구가 되어 줄 수도 없지요.
셋째로는 친구간의 불균형입니다. 독일작가 크니게는 말합니다. ‘한 사람의 편에 너무 많은 비중이 있으면 사랑은 방해받는다.’ 고요.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도우미, 치료자, 선생님, 후원자가 될 때, 그 우정은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동등한 위치가 되어야 하는데, 어느 한 쪽이 돕는 위치가 된다면 그 위치에서 내려와야 하겠습니다.
넷째로는 ‘지나친 호의는 우정을 약화시킵니다.’ 한 친구에게 너무 많은 선물을 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런 호의는 오히려 사랑을 매수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물론 선물을 준 그 친구는 그런 감정을 내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받지 못한 억눌린 감정은 공격적으로 드러나게 되어져 완고하게 변하겠지요. 한 쪽으로 기울었으니까요.
우린 좋은 사랑을 해야 합니다. 즉 상대방이 다른 사람의 상태를 존중해 주면서 사랑해 준다면, 사랑이 파괴될 염려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니까요. 내 뜻을 이뤄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니까요. 그럴 때 그 사랑으로 인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서 상대방과도 좋은 일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