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간 주일미사.
찬미 예수님. 일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여러분 집에 혹시 작은 인형이 있습니까? 저는 어느 날 그 인형에 제 이름을 붙여놓고 그 이름을 불러보며 ‘저’ 란 어떤 사람이었나?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잠시 들여다 본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기도를 하면서 자기를 들여다봐도 되지만 인형에 이름을 붙여 놓으니, 훨씬 더 현장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어땠을까요?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그 작은 인형을 보면서, 제가 그렇게 통이 큰 사람이 아니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쪼잔하고, 좀스럽고 쿨 하지도 못하고 누구 하나 제대로 배려하거나 사랑해주지 못해왔던 지난 과거를 보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봉착하면서 ‘아 그렇지~ 난 주님께 돌아가야 하는거구나’ 라는 다짐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요. 여러분도 집에 가셔서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재미있으면서도, 한편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 2주일이면서 동시에 예전 교황님이셨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2000년 대희년을 맞아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주일’로 선포하신 날입니다. 부족하고 빈약한 우리는 주님의 자비를 청할 수 밖에 없는 이들입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한 번 들여다 보십시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계획도 세우고, 목표도 갖추고, 실행에 옮기면서, 반성과 연구를 하면서 지낸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내가 원한 방향대로만 흐르지 않았습니다. 나의 한계도 맛보았고, 남의 탓을 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미워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고 그러면서 ‘나’ 라는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시간들이 많았었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나의 인생의 길을 허비하듯 멀리 삥~ 돌아온 것 같은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들의 모습처럼 그렇게 부족한 제자들에게 당신은 또 나타나 주십니다. 그것도 못 믿겠다고 버티는 토마스한테 말입니다. 토마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불신앙의 아이콘’이요, 보고서야 믿겠다는 ‘초짜 신앙인의 전형’ 이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저는 이 사도를 보면서 괜히 우리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아 고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 속마음도 그렇잖습니까? 봐야 믿을 것 같은 그런 마음 말이지요. 그런 우리의 마음마저도 헤아려주시는 그분이야말로 진정 크신 분인가 봅니다. 예수님도 속 마음은 그러셨을지 모릅니다. ‘너 진짜 나 못믿겠니?’ 그러나 하나하나 보여주시면서 토마스는 무너져갑니다. 그러나 그 무너짐은 세상에서 경험하는 기분 나쁜 무너짐이 아니라, 이제 당신께 자비를 구하고 당신 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굳어져 가는 무너짐입니다. 그의 이렇게 약했던 믿음이 전승에 따르면 인도로 파견된 사도가 되었던 것을 보면, 그의 무너짐은 오히려 약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서 철저히 무너져봐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님을, 그렇게 사랑 넘치는 사람이 아님을 확인하면서 예전 구약에서 구리뱀을 본 사람들이 살아남았듯이, 당신의 십자가를 보고, 죽음마저 이기신 참된 승리자, 부활의 주님을 체험할 때만이,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수유동 본당 교우 여러분
토마스의 무너짐이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란 고백을 낳게 하였습니다. 신앙의 여정도 꼭 성공의 길의 연속은 아닙니다. 기도가 잘 안될 때도 있고, 무엇을 체험했다고 하여, 마트에서 쌓는 포인트 적립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막을 통과해본 사람만이 사막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듯이쉽지 않는 주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잘 참고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