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 금요일. 예레20,10-13;요한 10,31-42
신부님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강론한데로만 산다면 성인이 될 것이다.’ 라고요. 물론 좋은 강론과 말씀을 여러분에게 해 드리지만, 한계가 오곤 하지요. 하지만 다시금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배경에는 그 안에 심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뉘우쳐 돌아오듯이요. 그러면 여러분 안에, 여러분을 만들어주는 심지란 어떤 것일까요? 그게 여러분의 정체를 말해주는데요.
율법학자들이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곧, 그분의 정체요, 그분의 신원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언론보도에 잘 나가는 어떤 스타강사가 논문을 표절했다고 하고, 어떤 인권운동가는 성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여기서 사람들의 이중성을 보게 됩니다. 겉으로는 번지르르 하지만 ,실상 그 안에 있는 심지가 자신도 모르게 밝혀지면서 드러나는 것이 과연 같은 사람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말이지요.
심지가 있는 사람은 항상 일관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기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남들이 반대하더라도 진리라고 믿는다면 소처럼 걸어갑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가 해놓은 결과물들이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알려줍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도 그런 모습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행동은 가까이에서 따르던 제자들도 오해했습니다. 그랬기에 도망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사무엘이 다윗을 뽑을 때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십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도 보지 못하고, 율법학자들처럼 사람이 하고 있는 행동도 보지 못하고 있는데요. 죄는 확실히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있어도 그걸 좋게 보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시력은 어떠하십니까? 남들의 올바른 모습을 잘 봐 주고 보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