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일 미사. 이사야 43,16-21;필리피 3,8-14;요한 8,1-11
복음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해 가는 지 잠깐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누군가 끌고 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아니라 내 앞에 데려온 것입니다. 그러고는 물어봅니다. “모세에 율법에는 이 여자를 율법대로 거행했는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 이제부터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대충 분위기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여자는 나하고는 부류가 다른 사람이니까... 쟤는 원래 그렇고 그런 사람이니까..’ 하며 경멸에 찬 눈초리가 시작되겠지요. 모두가 손가락질을 해댑니다. 정의와 법이라는 칼을 받아야 한다면서요.
잠시 화면을 돌려서 ‘그럼 교회란 어떤 곳인가?’ 에 대해 보겠습니다. 믿음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좀 더 하느님의 뜻에 맞기를 기대하며 일을 합니다. 그 안엔 즐거움도 기쁨도, 보람도 있는 그야말로 공동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곳은 천사들의 집단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평범하기 때문에 서로의 실수, 잘못이 보입니다. 저는 어릴 때 아이들만 실수를 하는 것이라 여겼지만 조금 크고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들도 여전히 잘못과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래도 교회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나 봅니다. ‘천주교인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기대감 말입니다. 허나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모였기에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못해 보이는 현장을 보며, 떠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런 평범함 속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평범함은 바깥에서 말하는 평범과 다르다고 말하면서 당신의 이름으로 뭉칠 때, 새로운 삶을 볼 수 있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떠나지도 않고 남아있으면서, 이 곳을 재건하려는 생각도 별로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받아왔던 상처 탓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예전에 생긴 상처에서 치유되지 못하고, 받았던 예전의 상황을 자꾸 확인하고 되새기면서 피딱지를 뜯어댑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요. 앞서 우린 평범한 사람들이고,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하는 사람들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현장에서 상처를 준 상대방 자신은 자기가 실수하였음을 못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자기 실수였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반복하는, 구렁에 갇힌 이들도 있습니다. 이른바 말을 해줘도, 가르쳐줘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약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살 수 있는 팁을 하나 알려드립니다. 1독서에 나옵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받은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보시니까 어떻습니까? 이건 단순히 잊어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만 보지 말고 넘어서자는 말씀입니다.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지금의 상태에 고여있지 않고, 우리가 아는 최종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 때, 나는 의연하게 대처하는 힘이 생깁니다. 받았다는 상처들이 나를 더 해칠 수 없음을, 나를 힘들게 만들 수 없음을, 지옥 같았다고 여긴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 나는 힘이 생깁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나를 소중히 여기고, 언젠가 승리하여 재기할 수 힘이 생깁니다. 당연히 남의 잘못도 그럴 수 있었음을 봐주는 여유와 헤아림도 생기지요.
다시 복음의 나왔던 간음한 여인을 바라봅시다. 아직도 경멸의 눈초리로 보고 계십니까? 나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제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요. 실수투성이에 지극히 평범한 사람임을 서로가 인정하고 헤아려 줄 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껴안아주는 마음이 생깁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내렸습니다.” 라는 바오로의 말을 되새기면서, 서로가 지은 죄가, 실은 서로가 서로를 가깝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는 차원으로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