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 토요일. 미카 7,14-20;루카 15,1-32
며칠 전 우리 본당도 아닌, 처음 뵙는 어떤 형제님이 면담을 신청해 오셨습니다. 내용인즉 자기 부인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니, 신부인 제가 나서서 얘기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분 말대로 부인이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화를 참지 못하는 문제도 그렇고, 자라면서 쌓인 피해의식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남편은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떨어져 살면서 돈만 부쳐줬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부인이 바란 것은 세상 누구보다 자기 편이 되어주는 남편과 함께 지내는 것이었는데, 이 형제님은 여러 이유를 들면서 들어갈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사랑한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잘못만 고발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진정한 치유가 되기 위해선 당사자 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투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로 면담을 끝냈는데요.
오늘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비유입니다. 잃었던 아들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밑에 있는 두 아들 모두,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만 보고 살았고, 첫째 아들은 아버지 곁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버지를 잘 모릅니다. 게다가 둘째가 돌아왔음에도 탐탁치 않게 생각합니다. 그럼 참된 해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린 보통 집안의 문제가 터지면 문제를 발생시킨 그 사람만 붙잡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정답일까요? 나머지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앞서 면담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릅니다. 그게 남이 아니고, 가족일 경우라면 아무리 부족해도, 문제가 있는 것을 알더라도, 껴안고 시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님은 문제가 생기게 되자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물론 그 마음도 이해가 되긴 합니다만, 멀찍이 서서 그 사람을 치유시키긴 힘들지요. 감동시키기 어렵지요. 복음의 아버지는 이렇게 합니다.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고 발에 신도 신겨줍니다. 그러면서 송아지도 잡아다가 잔치를 벌이지요.’ 한 사람을 살리기 원한다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희생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이 시대에 여러분은 가족을 어떻게 대해주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