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5주간 화요일

2013. 2. 12. 오후 4: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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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5주간 화요일. 창세기 1,20-2,4;마르 7,1-13

예전 제가 처음 서품을 받고나서 사목할 때와 요즘 사목을 하고 있는 지금과 차이가 있습니다. 즉 관점이 확대되었음을 볼 수 있었는데요. 예전에는 어린이들, 청소년들은 뭘 하더라도 용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단 어리구요, 실수를 많이 할 수 있는 나이이며, 사춘기 탓에 자기조절이 잘 안 되는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접근을 했기에, 뭘 잘못하더라도 우선은 끌어안으며 그들에게 다가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나이가 되신 이른바 직업을 갖고 있는 청년, 누군가의 부모님인 분들, 더 나아가 흰머리가 가득하신 어르신 분들에게는 조금은 차갑게 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이미 나이로 볼 때 성인이고요, 자기의 인생을 책임지며 가고 있는 분들이니까요. 어른답게 다 알아서 하실 수 있다고 본 것이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보좌, 부주임을 거치면서 아무리 어른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실수 연발이고, 어린이들처럼 사랑받고 싶어하고, 관심 받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는데요.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독서는 창조 이야기가 나오고 있구요. 복음서에서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키지 못하는 제자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신 하느님은 이미 창조된 것을 부리라고 하십니다. 여러 씨를 맺는 풀과 과일나무, 짐승을 줄 테니 너희 양식으로 삼으라고요. 왜요? 인간의 몸을 볼 때, 다른 들짐승처럼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도 없는 약한 생명체이니까요. 먼저 다른 창조물을 이미 다 마련해주시고 그것을 먹으라 하십니다. 율법이 생긴 이유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좀 더 잘 모시기 위한 도움의 구실을 위해 생겼습니다. 하지만 율법이 생겨난 이유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율법이란, 그야말로 거추장스러울 뿐이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율법학자들의 눈에는 그저 예의가 없는 사람으로만 비쳐질 뿐이지요.

 

자기 자신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린 참으로 약한 사람들입니다. 혼자서도 잘 못 살고, 같이 살아도 여전히 관계가 삐꺽거리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약한 우리들을 서로가 어떻게 바라봐주어야 하겠습니까? 내가 처음에 가졌던 이해의 폭을 넓힐 때, 기대심을 낮출 때, 그때야말로 참된 사랑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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