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간 목요일

2013. 2. 6. 오후 10:49:45

글자

연중 4주간 목요일. 히브12,18-24;마르 6,7-13

수행을 하는 불교의 보살들이 목표하는 최종단계가 있답니다. 그것은 바로 ‘수희찬탄(隨喜讚嘆)’ 이라는데요. 뜻은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착한 일을 하거나 공덕을 쌓는 모습을 보고, 함께 기뻐하며 찬탄해 마지않는 마음가짐’ 이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남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 어떤가요?

  오늘 말씀에 나오는 모습이 그런 모습입니다. 독서에 나온 광경이 이렇게 펼쳐집니다.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누구나 가고 싶은 곳, 끝내 다다라야 할 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누구나 부러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부러워 할 만한 사람들이란, 바로 주님과 계약을 맺은 우리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마치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꼭 글자 그대로는 아니지만, 주님에 의해 파견된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공덕을 쌓았기에 파견 받은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선택을 받아 임무를 행하게 된 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예전 사막의 교부였던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도 앞의 말과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발전을, 자신의 행복과 발전인 양 기뻐하며 바라보는 수도승은 행복하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착한 일도 하지 않지만, 남이 하는 착한 일에도 찬동하거나 동참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메말라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치 사촌이 땅을 사면, 또 남이 잘 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상대적인 박탈감에 배 아파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들의 삶도 계속 나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누구를 부러워 하느라 시간낭비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끊임없이 해 나가는 속에서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줄 수 있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서로의 역할은 달랐지만, 교회는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에 의해 파견된 사도들의 임무였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라는 이름 하나만 가지고 나아가는 모습이, 결코 무모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장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모습이 아무 것도 쥐고 있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다 가진, 파견된 자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댓글 1

  • 2013년 2월 14일 오전 8:27

    감사합니다~~~힘과 용기를 주시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