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주간 수요일. 히브 10,11-18;마르 4,1-20
요즘 레미제라블이라는 뮤지컬 영화가 인기가 있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장발장은 성당에서 주교님에게 대접을 잘 받고도 은식기를 훔칩니다만 곧 잡히지요. 그러자 주교님이 그에게 은촛대까지 안겨주면서 새사람이 되길 희망합니다. 보통 사람이 볼 때, 그는 범죄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미래의 그가 유명한 시장이 되리라고 주교님도 쉽사리 예상하진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풀었던 작은 사랑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적을 만들어 내는데요. 사람들에게는 아주 놀라운 재능이 있습니다. 그건 사람을 너무 뻔하게만 바라보는 재능입니다. 그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큰 사랑을 통하여 한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는 기적보다, 자아 도취된 자기 계산에 의해 한 사람의 미래가 오히려 없어지고 마는데요.
오늘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의 신비는 마치 수수께끼와 같습니다. 답을 들으면 다 아는 내용입니다. 마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사랑을 베푼다.’ 는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바깥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들어 합니다. 자기 식의 계산논리에 젖어 살던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람은 원래 행실이 안 좋기에 가능성이 없어요~’ 하면서요. 그러기에 모든 것이 비유요, 현실감각과 떨어져 보인다고 멀리합니다. 그 주교님이 베풀었던 사랑도 그러하지요. ‘왜 저러시지?’ 하면서 이해를 못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신비는 그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마치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처럼 말입니다.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주리라.”
당신의 마음이 새겨진 법을 들었다면, 우리의 다음 행보는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행보란 초월적입니다. 더 이상 사람을 뻔하게 보기보다, 기도의 힘을 통해 더 나은 미래가 되길 희망합니다. 나의 뜻이 이뤄지기보다 주님께서 움직여주시길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도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좋은 땅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땅이 제대로 기도할 때 좋은 열매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