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2013. 1. 11. 오후 11: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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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후 토요일. 요한1서 5,14-21;요한 3,22-30

만약 이런 느낌이 드시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자기의 시대가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의 느낌입니다. 언젠가는 그 날이오리라고 예상은 했어도 그게 현실이 되는 순간, 입 안은 씁쓸해질 텐데요. 예전에 상영된 영화중에 ‘아마데우스’ 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생애를 다룬 이 작품은 원래가 연극이 원작이기에 구성이 아주 탄탄합니다. 거기서 임금의 총애를 받는 궁정음악가인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질투하기 시작합니다. 젊은데다가 놀라운 작품을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나는 어떻습니까? 그런 사람을 보게되면 살리에리처럼 질투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반대로 박수를 쳐 주고 있습니까?

오늘 저는 요한이 느낀 감흥과 그의 제자들이 보인 반응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이야기 합니다.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 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 분께 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 선생님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데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런 분노가 오히려 선생님을 돕는다고 생각했겠지요. 물론 요한도 같은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기의 시대가 가고 있음을 직감하면서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 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마치 달릴 길을 다 달렸기에 기뻐한다는 바오로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역할이 끝나감에 슬퍼하기보다 새로운 시대가 그 분으로 말미암음에 오히려 기뻐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 역할을 다하고 바톤을 넘기는 육상선수의 환희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어떤 교우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보좌신부님이 너무 인기가 많아서 주임신부님이 질투를 한다.’ 고요. 그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인들 주임신부님에게 무슨 혜택이 올까요? 오히려 자신의 역할을 잘 하는 것만 못할 뿐이고, 본인이 그동안 잘 다져왔던 영성생활만 해칠 뿐인데요. 반대로 후배신부가 교회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우린 어느 순간이 지나가면 다 그런 것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린 여기서 요한이 느꼈다는 기쁨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 기쁨의 원동력을 알 때, 앞으로의 삶이 즐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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