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2012. 12. 27. 오전 12: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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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요한 11,1-4;요한 20,2-8

  무슨 일이건 간에 그 일을 체험하여 알아낸 사람이 있구요. 그저 주변에서 맴돌면서 그런 일이 있었데~’ 라며 남의 이야기로 들어서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부해서 알아낸 사람이 있구요. 그저 남의 말을 듣고 그런가 보다~’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이 신앙은 어떤 부류에 속하고 있습니까? 체험을 하셨습니까? 주변에서 맴돌다가 알았습니까? 공부해서 알아낸 경우입니까? 아니면 그저 남의 말을 듣고서 다 아는 것처럼 여긴 경우입니까? 이제 다들 믿으신 연차가 되셨기에 무 자르듯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뭔가가 섞여 있겠지요.

  오늘 요한 사가는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처음부터 있어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가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는 그저 남의 말을 들어서 아는 경우도 아니고요. 공부해서 알아낸 것도 아니고요. 더더욱 주변에서 맴돈 경우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증언을 할 정도면, 뭔가 자신의 내부가 흔들릴만한 큰 변화를 목격했겠지요. 오늘 복음에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베드로와 같이 빈 무덤을 목격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서술됩니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그저 마리아 막달레나가 말했던 것이 맞았다는 말이 아니지요. 그동안 주님이 여러 차례 말씀해 오셨던 것이, 진정 무슨 뜻이었는 지를 그야말로 한 방에 알아듣는, 그런 믿음이 된 것입니다. 마치 차의 시동을 걸 때, 키를 돌리거나,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엔진이 돌면서 그다음부터는 알아서 모든 기계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그런 단계처럼 말이지요. 그가 본 빈 무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그저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 주님이 약속하신 데로 다시 살아나셨구나.’ 이것이지요.

  요한 사가가 주님이 계셨을 때 그는 주님께 사랑받는 제자였답니다. 그런데 이 뜻이 무슨 말이었는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이쁘게 생겼다는 것인지, 시킨 데로 말을 잘 들었다는 것인지..’ 우리는 솔직히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조금은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제자와 다르게 조용히 주님의 말을 귀여겨 듣고 있었습니다. 그 일이 나중에 어떻게 확실하게 일어날 지 몰랐겠지만, 그는 주님의 말이 나중에 뭔가 이뤄지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기다림이 나중에 복음을 집필하면서 더 확신있는 믿음이 되었고요. 그 책이 그와 다른 사람을 살립니다. 그러면 우린 당신의 말을 어떻게 알아듣고 있습니까? 진심으로 받아들입니까? 아직도 주변인에 머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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