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마태오 11,16-19
본당마다 판공성사를 하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좀 놀랐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판공성사라고 아무리 광고를 해도, 그 기간에 잘 나오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신 주일미사를 하고 있는 도중에, 성사를 주고 있기에 그 때들 오십니다. 원칙상 한 자리에서 두 가지 성사가 주어지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주일미사를 참례한 것일까요? 아니면 고해 성사를 받은 것일까요? 둘 중에 어느 하나를 한 것입니까? 고스톱 용어로 일타 쌍피를 얻은 것입니까? 사실 우리 신부님들도 잘 한 것은 아닙니다. 신자들의 요청에 응해주고 있으니까요. 잘못된 것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렇다면 요청이 부당하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은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학자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그가 수도원 개혁을 잘 했다고들 말합니다. 그의 저서 ‘가르멜의 산길’, ‘어둔 밤’ 을 보며 그의 영성에 관심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요한은 박수를 받고 살았을까요? 1577년 10월 2일 요한은 수도회 개혁을 반대하던 다른 가르멜 수도자들에 의해 납치되어 톨레도 수도원 다락방에 9개월간 감금을 당합니다. 거기서 그들은 요한의 삶이 끝났다고, 그의 개혁은 이제 물 건너갔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락방 안에서 그는 어두운 밤을 체험하고 이 체험을 바탕으로 신비적, 영성적, 문학적인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그의 저서 어둔 밤 2장에 보면 영적 초심자들이 교만의 습성에서 지니는 영적 불완점을 얘기하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 많은 분들이 영성면담을 하면서 가르침보다는 자기네가 생활하고 있던 방법을 인정해주길 바랍니다. 찬성해주길 바랍니다" 라고요.. 즉, 고해를 하기보다 변명을 하고, 뭔가 물타기를 하면서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인정받으려 합니다. 자신의 결점을 과소평가 하기에 더 교만한 자세로 들어갑니다.
오늘 복음 끝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세상은 다락방에 가둔 사람보다 끝내 다락방에 갇혔던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