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왕 대축일. 다니엘 7,13; 묵시 1,5-8; 요한 18,,33-37
혹시 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교회는 대조사회다.’ 라고요. 즉 영어로 ‘contrast society’ 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사회라는 성격을 띠지만, 보통 사람들이 아는 그런 사회와는 차별되기에 부쳐지는 단어가 바로 대조사회입니다. 그럼 어떤 성격의 사회일까요? 게르하르트 로핑크가 쓴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라는 책을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마태 5,39)” 라는 말 속에서 노골적으로 난폭한 폭력이 돌출된다. 이것은 동시에 중대한 모욕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맞은 뺨이 오른쪽 뺨이지, 왼쪽 뺨은 아님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두 번째 맞게 되는 뺨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맞는 셈이다. 손등으로 뺨을 맞는다는 것은 중대한 모욕으로 여겨질 일이다. 예수는 말한다. “난폭한 폭력을 용납하라.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말라. 그러나 불의를 당하거든 꾹 눌러 참되, 그렇다고 우두커니 당하고만 있지도 말라. 적수에게 대응하라. 상대방의 강박이나 잔혹에 더욱 넘쳐흐르는 선행으로 응수하라. 어쩌면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그저 불의를 감내하기만 하는 수동적 자세가, 적수에게 한술 더 떠서 대응하는, 아니 바로 적수를 위하여 애를 쓰는, 그를 형제로 삼으려는 지극히 능동적인 자세로 변하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존재방식을 보여 주어야 하며, 세상질서와 삶의 방식과 대조적인 방식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때, 그것이 사회를 향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대조사회' 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이 맞다면 우린 대조 사회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의를 당히면서 사랑으로 응수하여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니까요.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주님을 임금이요, 왕으로 생각하고 모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왕, 여러분이 기대하는 왕은 어떤 모습입니까? 어쩌면 대선이 다가오거나, 투표날이 오면 후보자를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인물상과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여기서 나는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떤 미래를 만날 것인가?’ 하고요. 그런 기대감은 구세주의 약속을 기다리던 구약인들의 바람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 많은 이방민족의 침략을 받으면서 살아오다가, 이제는 로마의 압제 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힘 있는 왕이 오는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런 왕이 오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을 보면 어떻습니까? 그저 힘없이 로마 총독 앞에 끌려나온 죄수의 모습입니다. 이에 빌라도는 절차상 심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요?” 그러자 오히려 질문을 받습니다.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준 것이냐?” 우리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왕이라고 부르고 있다면, 과연 내가 ‘왕, 임금’ 이라는 단어에 긍정하면서 나오는 답인지, 그냥 누가 그렇게 부르라니까 따라 부르는, 그런 수준의 신앙심인지 우리에게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당신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여전히 사람들이 서로를 괴롭히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서로의 이권을 위해 다투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 때에 하느님의 아드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또 죄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인간이 가져온 세상 방식의 한계를 보았으니, 다시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으로 돌아가는 나라가 와야 합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귀에 못이 박힌 듯 이렇게 묻습니다.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그러니까 ‘나는 그런 거 잘 모르겠고, 당신이 말하는 걸 보니까.. 내 밥그릇 침범할려는 거 아니냐?’ 고 다시 묻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불안해서지요. 그동안 자신이 가진 것을 예수라는 사람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될까봐, 털을 곤두세우는 짐승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가 사는 하느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은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시작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아직도 예전 방식으로만 고집한다면 여전히 주님을 오해하며 살 것입니다. 하지만 대조사회의 성격을 알고, 그분의 보여주신 가난이, 그동안 어긋났던 비인간화된 세상을 다시금 정화시키는 세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신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여주는 삶이 뒤틀린 세상에 경종을 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로 교회 전례력은 마감을 합니다. 다음 주는 대림, 즉 교회의 정초입니다. 한 주간 동안, 그동안 보냈던 1년을 잘 정리하시면서 주님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