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미사

2012. 11. 15. 오전 12: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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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미사

  사람이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인사라는 것을 합니다. ‘안녕, 잘 있어, 행복해야 해, 그 날 다시 보자. 나 간다....’ 그런데 오늘 우리 앞에 누워계신 김 율리안나는 그런 인사도 주고받지 못한 채, 그만 주무시다가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주일미사도 잘 나오셨고, 전날까지 가족들과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셨는데 말이지요.

신부님들과 수도자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바치는, 성무일도 끝기도의 ‘시므온의 노래’ 가 있습니다. “낮 동안 우리를 활기있게 하신 주여,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리니, 자는 동안도 지켜 주시어 편히 쉬게 하소서. 주여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하소서. 만민 앞에 마련하신 주의 구원을 이미 내 눈으로 보았나이다.” 김 율리안나 어머님의 부고소식을 들으며, 매일 잠자리에 드는 수면의 시간을 마치 죽음의 시간으로 보았던 이 기도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기도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살아있는 삶의 시간을 이미 은총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율리안나 어머님의 갑작스런 돌아가심 속에서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시려 하셨는가 봅니다. “주님의 구원을 이미 내 눈으로 보고 있다.” 는 사실을말이지요.

분명 이런 갑작스런 헤어짐은 당신에게도, 지켜드리지 못한 우리에게도 상처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준비’ 라는 말도, 어쩌면 주님을 고려하지 않은 나의 뜻이 아닐까요? 미처 나누지 못한 율리안나 어머님의 작별의 인사를 바라보며, 우리의 한계를 너머서는 그 분의 큰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리고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실로 하나도 없구나.’ 하지만 이런 나약함이 그저 부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이 시간동안 서로에게 어떤 사랑을 해 줄 것인가? 를 보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여러 이유 때문에 멈칫거리며 더 다가가지 못하는 나의 태도를, 율리안나 어머님의 작별의 방법 속에서 이제는 결단으로 바꾸게 해 주는 힘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분명 슬픈 날이지만, 정말 큰 것을 가르쳐 주셨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어머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주님 율리안나 자매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댓글 1

  • 2012년 11월 15일 오전 6:4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