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8 주간 토요일. 루카 12,8-12
우리는 주일이나 대축일 미사 때마다 사도신경을 외우며 우리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합니다. 이 신앙 고백은 바로 우리가 몸과 마음으로 밖으로 드러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그런데 그런 고백을 할 때마다 짜릿하십니까? 아니면 그저 그런 시간이니까 따라하고 있을 뿐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께 대한 신앙 고백을 요구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당신이 요구하시는 신앙 고백은, 그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전인격, 전존재를 온전히 투신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그저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혼자 잘 지켜가기만 하면 되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신앙을 그저 묻어 두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임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복음이 쓰였을 당시를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 이라고 고백하는 자체가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굉장히 큰 용기와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도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의 어려움일 때, 과연 드러낼 만한 용기가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에도 예수님 당시의 상황과 비슷하게 당신을 증언하기가 점점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회 학문이 발전하고 과학 기술을 믿으며, 편한 것만을 찾는 이 시즌에, 목숨을 내놓는다는 자체가 신앙인 사이에도 한낱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어제 뉴스에 보니 가톨릭 국가인 우루과이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법령이 의회를 통과했답니다. 남미에서는 처음이고, 중남미에서는 쿠바에 이어 두 번째라는데요. 이미 가톨릭 국가인 나라들이 이러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까지 해 왔던 우리의 몸부림이 힘이 빠집니다. 괜한 배신감도 느낍니다. 현실이 녹록치 않구나 하는 것도 느낍니다. 이처럼 드러내놓고 신앙 고백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리가 내려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진정 알 수 있듯이, 이런 위기상황은 나의 신앙상태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겨집니다. 편한 할 때는 모두 성인군자입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쳐 그것을 헤쳐나갈 때 사람들의 참된 모습이 드러나는데요. 오늘도 날은 밝았고 나에게 그런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좋은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