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간 금요일. 에페소 1,11-14;루카 12,1-7
예전에 이집트로 성지순례를 갔을 때 일입니다. 동행한 여행사 가이드가 말하길, 다음 날은 시나이 산에 올라간답니다. 하지만 그 산은 해가 뜨면, 워낙 뜨겁기 때문에 이른 새벽에 올라가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과연 2시 경 쯤에 모였습니다. 그곳엔 우리가 이미 올 줄 알고 낙타가 엄청나게 모여 있었습니다. 직원이 말하길 그 산은 그냥 올라가면 힘들기 때문에 낙타를 타고 올라가거나 또는 걸어 올라갈 수 있다는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물론 성지순례이기에 모세처럼 걸어 올라가면 얼마나 뜻이 깊겠습니까마는, 저는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낙타를 타 보겠냐 싶어, 낙타를 타겠다고 했습니다. 이놈들은 혹이 하나인 외봉낙타이기에 엉덩이가 굉장히 불편하므로 그전에 얘기들은 것이 있어, 미리 호텔에서 준비한 목욕 타월을 깔고 올라탔습니다. 낙타 한 마리당 인도하는 사람 한 명씩 붙어서 인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이런 길을 오가기에 그들에게서는 익숙한 광경입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곳에서 그렇게 등정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낙타를 믿으며 꿀렁꿀렁한 승차감 속에서 재미있게 생각되며 올라가는 데, 점차 어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낙타가 글쎄 절벽을 바로 옆에 끼고 절 인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두려워졌습니다. 온 몸이 움츠러 들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저를 안전하게 내려줬는데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고요한 사람은 귀와 눈이 탈을 일으키지 않는데, 눈과 귀만을 믿고 사는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스스로 병을 일으키고 만다는 것입니다. 깜깜할 땐 낙타를 믿으며 즐겁게 올라갔는데, 어둠에서 조금 눈이 뜨이니까 그제서야 무서워 떨고 있었습니다.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물 마실 때는 시원하게 마시며 모르다가, 날 밝으니 썩은 물인줄 알았다는 체험처럼 말이지요. 그 녀석은 매일을 그 코스로 그렇게 사람을 날랐을텐데 말이지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육신을 죽여도 그 이상 아무 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마라.”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서 삽니다. 아직 오지 않은 공포, 아직 맛보지 않은 고통을 미리 느끼면서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진정 두려운 것은 그것이 두렵다고 느낀 나의 감각기관이었습니다. 가만히 낙타를 타고 갈 땐 몰랐던 것을, 눈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그제서야 두려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연암 박지원은 사람을 명심자와 신이목자로 구분합니다. 명심(冥心)자는 이목에 현혹되지 않는 사람이고, 신이목(信耳目)자는 글자대로 제 눈으로 보고 들은 것만을 믿기에, 일을 그르치는 사람을 뜻합니다.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린 그 분을 본 적도 음성을 들은 적도 없는데, 무슨 믿음과 희망을 두고 찬양을 하는 것일까요? 위태로움이란 보고 듣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가진 감각을 뛰어넘어야겠습니다. 그럴 때 평안도 올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