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 화요일

2012. 10. 9. 오후 9: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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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7주간 화요일.

요즘 다들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아껴서야 합니다. 그러면서 가계부를 들여다봅니다. 어디서 줄일까? 어떻게 줄일까? 머리를 굴리다가 이제 남은 건 ‘교육비’ 밖에 없습니다. 사교육을 안할 수 없지만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 줄이라고 교육관계자들은 이야기 합니다. 너무 과외를 많이 시키면 자기주도학습이 안된다고요. 자기가 알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저 가르쳐주는 것만 하니 공부가 재미가 없고 학습능률도 안 오른다고요. 그래서 세상엔 또 이런 것이 나왔습니다. ‘자기주도학습지도사’ 라는 것을요. 자기 주도 학습을 가르쳐 주는 과외 선생님이 또 생기고 말았는데요.

주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할까요? 신부님, 수녀님만 붙잡고 늘어져야 할까요? 피정센터를 동네 보습학원 가듯이 다녀야 할까요? 우리 종교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계시종교’ 라고요. 주님이 먼저 알려주시고 부어주신 것이라고요. 홀로 깨달아서 알 수 없다고요.

오늘 독서에 나온 바오로는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예전에 사도들을 박해하던 ‘과거’ 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과거’ 탓에 모두 슬슬 피하고 바오로 자신도 신자들을 만나기 두려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그가 살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일까요? 주님이 직접 만나주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 분을 내 안에 계시해주셨습니다. 그 때에 나는 어떤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당장에 모른다고 누군가를 찾기보다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기다리며 헤아리는 것, 그것이 참된 주도학습 아니겠습니까?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몫도 그렇습니다. 당장엔 아무 것도 안 하고 멍하니 굼뜬 자세로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답답해 보일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만큼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어쩌면 마르타는 시중을 들면서 내심 기뻐하는 손님들의 얼굴을 상상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주님 자체’ 로 다가가진 못했습니다.
 여러 실험과 실패를 거듭한 사람이 성공하듯이 분명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여도 한 단계씩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이끄시는 길은 마치 안개 속에서 걸어야 하는 징검다리 같습니다. 멀리도 보이지 않고, 탄탄대로도 아니지만 하나하나 걷는 속에서 발전하는 것, 그게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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