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4 주간 목요일 고린토 1서 15,1-11; 루카 7,36-50
우리들을 보면 남을 책망하고 혼내는 것을, 마치 일상생활에서 흔히 있는 일처럼 여기면서 삽니다. 그 꾸중을 받고 툴툴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축된 분위기 때문에 계속 꿍하거나 엇나가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며칠 전에도 어떤 제보를 받았습니다. 어떤 교우가 있는데 그 사람과 같은 공동체에서 함께 하기 힘들다고요. 이미 동네 사람들은 그 사람의 행실을 알고 있다고요. 그럼 그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용서받은 사람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보여줍니다. 바오로 성인은 예전 주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지만, 당신께 용서를 받아 새 사람이 되었구요. 죄 많은 여인이었던 이 여인은 갖은 정성을 다해 그분을 모셨기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누가 뭔가를 잘못하면 무조건 꾸짖고 봅니다. 그러나 그렇게 꾸짖고 나무람으로써 다른 사람을 제압하는 것은 사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기를 꺾어놓을 뿐이니까요. 그렇게 꺾여져 버린 그의 슬픔은, 그 자신을 마비시키고 변화될 수 있는 여지는 정지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 대해 쉽사리 포기를 하겠구요. 계속 거리낌 없이 같은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죄를 지었던 사람은 아직까지 진실과 대면할 힘을 가지지 못하기에, 변화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동체 사이에도 손가락질을 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그런 짓을 당해도 싸다고 여깁니다. 그럼 교회에도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혹시 “적게 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는 말씀처럼 남들에게 사랑을 적게 받았기에 비난의 화살을 쏘는 것은 너무나도 잘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을 나무라기 앞서서 그의 잘못과 진실 사이의 거리를 좁혀줄 필요가 있습니다. 심한 비난은 그를 실망에 빠지게 만들지만 용기를 꺾지않는 배려의 용서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지게 만드는데요... 복음의 그녀는 분명 새로운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내면의 힘을 키워주는 용서의 마음이 그녀를 살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런 하느님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