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4주간 토요일

2012. 9. 22. 오전 4:02:16

글자

연중 24주간 토요일.

사제 서품을 일 년 앞둔 제가 왜관 베네딕토 수도원에 간 것은 순전히 ‘성작’ 을 새롭게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성작에 관한 디자인에 대해 면담을 마치고 수도원을 나오려는데, 한 무더기의 젊은이들이 수도원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계절이 여름이었는데요. 그들이 입고, 신고 있는 패션은 그야말로 수도원에서는 볼 수 없고 행할 수 없는 가관이었습니다. 겨드랑이가 다 보이는 나시 티에,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시원한 쪼리 샌들, 딱 들러붙은 바지에 진한 화장까지.. 솔직히 ‘얘들이 왜 왔지?’ 하는 의문을 품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여름마다 ‘젊은이들을 위해 수도생활 체험학교’ 를 연다는데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꼭 수도승이 되지 않아도 관심있는 이들을 위해 수도복부터 입혀놓고 4일간 프로그램을 한다는데요. 저는 이것을 보면서 남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러저러한 생각을 할 수 있어도, 실제 그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우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거룩한 것에 대한 동경 말입니다.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비록 그들의 겉모습이 불량스러워 보여도 그들 한 켠에는 뭔가를 갈구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살고 싶다는 갈증이지요, 마찬가지로 그런 갈구와 갈증이 우리를 살려냅니다. 그리스말에 아스케시스(askesis)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욕망을 최소화하는 금욕주의를 뜻하지만 실제로는 단순하게 ‘실천, 훈련’을 뜻합니다. 그래서 ‘수덕주의’ 라고도 쓸 수 있는데요. 수덕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보다 효과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운동선수들이 기량을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해야 하듯이 영적성장을 위해서는 항구하고 양심적인 실천으로 영적인 군살을 빼는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하는데요. 이것이 이뤄지려면 먼저 나쁜 쪽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생활 중에 있는 여러 군더더기를 빼라는 것이지요. 바오로가 말했습니다. ‘이기기 위해 달리라’ 는 말은 하느님께서 되라고 하신 존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그게 수덕생활을 가장 정확하게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그러기에 영성생활은 무슨 낭만적인 그 무엇이 아닙니다. 뭔가 그저 편안하게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 안에는 치열한 자기 검증과 자기 훈련을 위한 세심한 내적 균형이 필요로 하고요. 인격의 재창조를 위한 시간이 요구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쉽게 말하는 십자가의 길을 이야기 하면서 ‘만약 그대에게 십자가가 주어지거든’ 이 아니라 ‘십자가를 질 때’ 그동안 해 왔던 영성생활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십자가가 멀리 있을 때는 그저 이상적인 이야기만 합니다. ‘잘 져야 한다. 이겨내야 한다.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기 시작했을 때, 그제서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또는 해결해 가면서 펼쳐지는 참된 내가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선결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나의 거짓된 모습을 철저히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된 나를 부숴야만 초대받은 생명으로 인도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할까요? 단식? 희생? 이런 것도 좋지만 먼저 ‘깨어있는 의식’ 이 되어야만 합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예전에 반복된 잘못은 무엇이었던가?’ 그걸 볼 때 미래의 내가 가야 할 방향이 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매일 매일 하고 있는 미세한 행동을 잘 들여다 봐야 합니다. 예전에 음악의 대위법에 관한 책을 봤는데요. 그 책 서문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항상 기억하라. 물방울은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속적으로 낙하함으로써 바위를 뚫는다’. 고요.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와 내게 맡겨진 매일하고 있는 똑같은 직무가 나를 살려냅니다.

솔직히 같은 직무를 계속 한다는 건 따분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하게 될 때, 오히려 깊이가 드러나고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이 보이는 시각이 뜨이는데요. 여러분도 그것을 볼 줄 아는 분들이 되기 바랍니다.

댓글 1

  • 2012년 9월 24일 오후 5:39

    신부님(선생님)의 가르침을 항상 기억하면서 낙수물이 바위를 뚫듯이 클래식기타 연숩도 계속하면 명쾌한 연주법 통달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