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4주간 월요일

2012. 9. 16. 오후 10:16:39

글자

연중 24주간 월요일. 고린터 1서 11,17-33;루카 7,1-10

온 가족이 모여 있는 저녁식사 때에 큰 아들이 결혼발표를 합니다. 길 건너 사는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말입니다. 이어 아버지가 바로 반대를 합니다. “하지만 그 애는 물려받은 유산이라곤 한푼도 없다더라”. 이어 어머니가 맞장구 칩니다. “지가 벌어서 적금한 것도 없대”. 남동생이 말합니다. “그 여자는 축구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어”. 누이동생이 말합니다. “난 그렇게 우스운 헤어스타일은 첨 봐~”. 삼촌이 말합니다. “그 여자애는 순 소설책만 읽는다던데?.” 숙모가 말합니다. “젊은 여자가 패션감각이 어떻게 그렇게 떨어지는지 원~”. 할머니가 말합니다. “어쩜 아무거나 막 버리는 지 낭비가 심하더구나”. 그러자 큰 아들이 얘기 합니다. “그래요. 모두가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 여자에게는 우리보다 뛰어나게 유리한 점이 하나가 있어요.” 모두 궁금해 합니다. “그게 뭔데?” 그러자 큰 아들이 얘기합니다. “우리 같은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 가족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를 남들이 이야기 하길 ‘가톨릭 교회’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럼 가톨릭이 뭡니까? ‘일반적, 보편적, 공번된’ 이라는 뜻입니다. 즉 가톨릭 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는 신앙과 사랑의 일치를 뜻합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를 보십시오.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한데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만찬을 먹을 때 서로 기다려주십시오.” 라고 한 것을 보면 내 배만 차면 그뿐이라는 생각이 문제를 낳게 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발상은 지금도 이어집니다. 그래서 홀로 사는 가정이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독신은 진정한 의미의 독신이 아닙니다. 참된 독신이란, 주님께 자기를 바치는 봉헌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독신은 어떻습니까? 그저 남과 부딪히기 않으려 피하는 도망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독신에서 무슨 공동체가 있고, 무슨 배려와 사랑이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백인대장의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기 노예가 아프다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당시 같으면 노예는 사람도 아니기에 그 노예를 버리고 건강한 새로운 노예를 사면 그 뿐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가족들과 삽니다. 집에 사는 가족들, 직장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믿음으로 뭉친 교회의 가족들, 이들을 어떻게 여기시고 계십니까? 혹시 앞서 말씀드린 우화처럼 서로 분란을 일으키고, 말만 많은 것은 아닙니까?

댓글 1

  • 2012년 9월 17일 오전 9:25

    가족과 이웃을 자~알 섬기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 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