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2테살로. 2,1-17;마태 23,26
며칠 전 제가 맡고 있는 분과에 회의를 들어갔습니다. 그날도 회의의 시작은 복음 나눔으로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읽고 나서 제가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나눔을 할 때 그동안 신자로 살면서 주님께서 주신 열매가 있을 것인데 그것을 잠시 나누는 시간을 갖자’ 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남의 이야기는 잘 하지만, 자기 이야기는 내놓길 꺼립니다. 하지만 자기가 그동안 얻었던 열매를 다시 볼 때만이 내가 주님과 얼마나 가까운 삶이었는가를 볼 수 있는데요. 그 날 어떤 분께서 이렇게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수더분하게 생기신 그 분은, 외모와 다르게 말씀을 들으면서 자아가 강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내게 나타나 보여주십시오.” 라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날짜와 시일까지 정하면서 “그 때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믿지 않겠습니다.” 라고 했답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발칙했다고 털어놓은 그분은, 자신이 정한 시일 중에 있었던 기도모임에 가 그야말로 펑펑 울면서 회심한 내용을 나눠주었습니다. 오늘은 아우구스티누스 주교학자 기념일입니다.
왜 하느님은 우리에게 나타나 주실까요? 사실 주님이 꼭 나에게 나타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아쉬운 사람은 우리지, 주님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나타나 주십니다. 왜일까요?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이지요. 무언가를 계속 알려주시고 싶어하십니다. 마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뭔가 자꾸 가르쳐주시려는 마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학생이 문을 닫아버리면 더 이상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데요. 어쩌면 주님과 제일 가깝다고 할 수 있었던 율법학자들이 복음에서 욕을 먹고 있는 이유가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그 분에 대해 제일 잘 알아.’ 하지만 그 앎은 여전히 한계에 갇힌 앎일 뿐입니다.
그 똑똑한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께 무릎을 꿇은 이유를 보며 사람은 자신의 머리를 믿지만 그 머리를 넘어서는 주님의 큰 사랑이 무언지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갑자기 다가오는 주님의 사랑은 분명 버겁습니다. 놀랄 일이기도 하구요. 마치 태풍과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태풍은 분명 사람에게 해를 끼칩니다.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물 부족 국가의 시름을 한 방에 해결해주고요. 지구의 대기 온도를 균형있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해수를 섞어 순환 시켜주면서 바다 생태계를 활성화 시키는 장점이 있다는데요. 주님이 갑자기 오심은 분명 놀랄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나의 신앙상태를 다시 보게 하는 것이라면 ‘마라나타, 주님 오소서’ 라고 외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