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일. 탈출 16,2-15;에페 4,17-24;요한 6,24-35
학교와 학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개념정리부터 하자면 법적으로 공교육기관을 가리킬 때 '학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요. 학원은 정규적인 국민교육과정 외의 기술을 가르치는 사설교육기관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은 학생들이 받아야 할 교육이 어떤 과정으로 나가야 하는 지 밑그림부터 시작하여 색칠까지 전 과정을 담당합니다. 그래야 지금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면서, 나중에 응용할 수 있는 힘도 기릅니다. 하지만 학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들 편에 서서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것만을 알려줍니다. 당연히 학원이 더 좋아 보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콕콕 집어 금방 알려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더뎌 보이고, 불필요한 것도 알려준다고 여겨 따분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럴까요? 지금 당장 필요한 것만이 실상 필요한 전부일까요?
저는 오늘 독서와 말씀을 읽으며 이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참된 선생님이란 사실입니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나만 왜 이런거야?’ 의문과 푸념에 절어 삽니다. 1독서에서도 사람들이 불평을 터뜨립니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 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광야로 끌고왔소?” 이런 불평은 계속 이어졌고, 그들이 광야에서 헤맨 기간은 한 세대를 넘긴 40년간 계속 되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이집트,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면서 버스로 광야를 통과할 때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사막이니까 차를 타고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광야를 통과하는데 버스로 반 나절도 안 되어 가나안 지역에 다다랐다는 것입니다. 버스는 반나절, 걸어서는 40년. 이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여기서 버스가 빠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여기서 그들이 40년을 헤맸다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들어가기 위한 수양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즉 당장 들여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봐야 그들은 하느님의 고마움도 금방 잊을 것이고, 계속 주님께 불평을 터뜨릴 인간들입니다. 세대를 넘어가는 고통이 있어야 신명기 6장의 말씀처럼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게 만드는 교육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참 교육자이십니다. 우린 당장 어려운 것만을 보지만, 주님은 이미 멀리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우리에게 미리 알려줬더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잘 따르겠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왜 그리 하냐고.. 불평을 또 터뜨릴 것을 아시기에 이를 감추시고 실행해 가십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살 공간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신데요. 이런 멀리 보는 주님의 뜻하심을 알지 못하면, 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상황과 똑같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의 하느님만을 찾는 사람은 나도 모르게 하느님을 싸구려로 만들 위험의 소지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저속하게 만드는 부류의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숨은그림찾기 해 보신 분은 아시지만 그림 안에는 모두가 다 아는 국자, 야구방망이, 컵 따위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도 마치 숨은그림찾기와 같습니다. 당장은 안 보입니다. 그래서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습니까? 답을 알려주는 것이 참 선생님이 아니라, 답을 발견하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참 선생님이듯이 그 분도 우리가 그런 힘을 키워가길 바라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수유동 본당 교우 여러분
오늘 2독서의 말씀을 끝으로 강론을 마칠까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지난 날의 생활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버리고 진리와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ㅎ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 그런 새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와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