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17주간 목요일

2012. 8. 2. 오전 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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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7주간 목요일. 예레 18,1-6;마태 13,47-53

 주님을 믿다보면 한편 실망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자기 뜻이 안 이뤄져서, 또는 자기 허물이 자꾸만 보여서, 오히려 믿지 않을 때가 더 자유스러웠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신앙을 시작하면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는 교회의 부름이 마치 내 삶의 제동장치처럼 느껴져서 교회를 피하는 사람들을 보는데요, 그러나 한편 그들이 간과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이 신앙은 하느님 맘대로 하는, 무조건적인 수동적 신앙 같지만, 실은 내 편에서도 할 역할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독서에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처럼 그 흙을 빚는 주님이 솜씨에 따라, 우리는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됩니다. 이것을 놓고 볼 때, 자신의 노력만으로 완전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자신을 완전히 하느님께 내어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동안 해 봤잖습니까? 나 혼자서 어떻게든 해 보려는 시도 말입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서 수련한다는 것은 쉽게 절망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절망으로 인해 부서진 삶의 파편은 재미있게도 다시 하느님과 나를 만나게 이어줍니다. 즉 나는 하느님이 없으면 안 되지만, 하느님도 내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옹기장이의 솜씨에 따라 좋은 예술품이 나오겠지만, 한편 불순한 진흙이라면 옹기장이의 의도대로 좋은 그릇이 나오질 못합니다. 즉 무조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고 무조건 멍하니 앉아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길 구경만 하는 내가 아니라, 실은 우리도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 나름 결정하고, 계획하고, 선택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옹기장이인 하느님과 진흙인 우리는, 역동적인 창조의 관계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이제까지 하느님이 날 어떻게 하시려나? 넋 놓고 쳐다만 보신 분이 계신 지 모르겠습니다. 옹기장이가 ‘나’ 라는 좋은 그릇을 잘 빚을 수 있도록 진흙 자체인 내가 좋은 재질의 진흙이었는지, 그 분께 협력하려 했는지 살펴볼 때 나는 좋은 그릇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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