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토요일

2012. 7. 27. 오후 11: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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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6주간 토요일. 예레 7,1-11; 마태 13,24-30

제 직무 중에 하나는 미사 전례표를 작성하는 일입니다. 매일 매일, 한 달 간의 미사 순서를 제가 짭니다. 그런데 다른 본당과 달리 우리 본당은 매우 일정하게 미사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기 전부터 있었던 일인데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토요일 새벽 미사는 다른 요일과 달리 바쁘지 않기에 영성적인 강론을 하겠습니다. 그 날 말씀에 맞추어 기도하는 방법이나 성찰의 요령 등을 알려드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벼와 피를 구분하기 힘들 듯이 이 둘도 구분하기 힘든 모양입니다. 여기에 조심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내리고 있는 판단이 생각보다 매우 빠르다는 사실입니다. 종들이 얘기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만약 예수님이 말리지 않았다면 거두고 난 후, 매우 뿌듯해 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의 나중 결과와는 상관없이 말이지요. 그것이 혹시 좋은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는 과정을 기다려 주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여기에 사도적 성찰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는데요.

  사도적 성찰이란 제가 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사도적 성찰은 마치 엠마오의 제자들이 주님을 다시 만났을 때 하고 있는 이야기 과정과 비슷합니다. 먼저 이것을 할 때, 시작을 주님께서 함께 머무시도록 침묵과 기도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 사람 또는 한 사건을 찾습니다. 당연히 그 안에 내가 어느 정도 연루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과 형제들에게 내놓으면서 시작합니다.

  먼저 ‘관찰’ - 설명하는 - 자세입니다. 내가 관찰한 것을 공동체에게 이야기 하면서 깊이 있고 상세하게 사건을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듣는 이들은 등장하는 사람들의 행동, 태도를 잘 관찰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에 영향을 준 원인들, 즉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여러 원인을 들여다 봅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즉 다른 호기심, 판단, 감정이입이 들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즉 근본을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마치 엠마오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하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판단’ 즉 - 관상, 식별 - 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기도 가운데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내맡겨, 함께 공유한 이 사건에 대해 우리의 근원인 성경의 말씀이 솟아나게 합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어떻게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식별하는 단계입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22항’ 에도 있는 이야기지요. 그런 다음 주님께서 당신 말씀을 통하여 그 사건에 관한 우리의 첫 번째 시선이 변화되도록 자신을 맡기며 우리의 이해가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에 부합되는지 점검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생생한 현존에 관해 우리가 깨달은 것을 나눕니다. 마치 엠마오의 제자들이 예수님에 의해 그동안 예언되었던 구약의 말씀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설명 듣게 되는 과정입니다.

  셋째로 ‘실천’ - 회개하는 - 과정입니다. 현재 우리가 깨달은 것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비록 그것이 우리 목표와 논리에 언제나 부합되지 않아도 우리가 그 분의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 행동은 성령께 순명하면서 주님께 언제나 협력하고 주님께 돌아서려는 갈망으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거하시는 교회의 기준에 언제나 깨어있는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결말이 이르는데요. 그동안 성찰한 것을 기도와 감사를 통해 주님께 경축 드리고 마치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이 성찰의 내용을 가지고 미사 지향을 드려본다면 좋은 결실을 이룰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성찰의 과정을 통해 닥쳐온 사건을 잘 풀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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