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2012. 7. 7. 오전 11: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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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신부님 사제 순교자 대축일. 역대2 24,18-22;로마5,1-5;마태10,17-22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김대건 신부님, 하지만 너무나 잘 안다고 여기기에 그냥 지나치기 쉬운 김대건 신부님은 고국에 귀국한 후 많은 유혹을 받으셨다는데요.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여러분께 이런 제안을 해 온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요즘 살기가 얼마나 불안해? 나이들수록 돈은 더 많이 들어가잖아? 주말이면 여행도 가고 싶은데, 하느님이란 분이 오히려 방해꾼처럼 보이잖아? 그치? 그렇다고 니가 솔직히, 신앙생활을 열심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자가 아닌 것도 아니고, 이도저도 아닌 인생보다 한번 사는 거~ 제대로 살아야지 않겠어? 성경에도 나오잖아? ‘너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니, 나는 너를 뱉어버리겠다.’ 그런 사람 하느님도 별로 안 좋아한다구~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들어봐! 니가 믿는다는 하느님, ‘그런 분은 없다고!’ 딱 한번만 얘기만 하면, 앞으로의 네 삶, 완전 탄탄대로로 만들어줄게. 사람이 살면서 최고 중요한 게 뭐야? 건강이잖아? 건강해야 딴 일도 하는 거라고.. 그리고 가족들과 잘 지내는 거.. 진짜 원하잖아? 그거 다 해줄게.. 그리고 니가 예상한 정년퇴직보다 10년은 더 일하게 해주고.. 어때 해 볼만 하지? 그런 분 없다고 딱 한 마디면 돼...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어.. 중요한 건 너잖아?”  어떻습니까? 달콤하게 들리십니까?

  김대건 신부님은 1845831일 상해에서 라파엘호를 타고 928, 제주도에 도착하여 그 해 11월과 12월 사이에 사목을 하신 것이, 이 분의 실질적인 사목 기간의 전부입니다. 2개월 가량의 짧은 기간 동안 사목을 하셨지만, 사실 그분은 당시 조선에서 제일 뛰어나신 신지식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과 달리 당시는 유학을 할 수 없었던 환경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신학공부를 라틴어로 했으니 라틴말은 당연히 잘하실 것이고요. 지도신부님이 프랑스 신부님이셨으니 프랑스 말도 대단히 잘하셨을 것입니다. 중국과 마카오, 필리핀에서 공부와 피신 생활을 하셨으니, 동남아의 언어와 문화도 대단히 잘 아실 것입니다. 게다가 다른 서양의 많은 문물과 교육을 접하셨으니 당시 대원군 하에서 쇄국정책이었던 나라에서 김대건 신부님이란 분은, 그야말로 특급대우를 받을 만한 스카우트 1호 대상입니다. 그래서 잡혀있던 김대건 신부님에게 이런 제안을 해옵니다. 하느님을 안 믿는다고 한 마디만 하면 모든 것을 다해주지, 벼슬을 달라면 벼슬을 주고, 불쌍한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도 할 수 있게 해 달라면, 그 길도 마련해주마.사실 김대건 신부님의 어머니는 대단히 가난하셨습니다. 배교만 하면 모든 것이 주어진다는 유혹은, 마흔 여섯 번의 문초 속에서 더해만 갔습니다. 아들한테 엄마의 어려운 사정을 붙잡고 제안을 해 오는데,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너 때문에 네 엄마가 계속 고생해도 되겠니?’ 라는 말에 여러분은 뭐라고 응답하시겠습니까?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오늘 복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판단의 기준이 서려면 기도를 통해 이뤄집니다. 어떤 것이 바른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분간하기조차 힘들 때, 기도를 한 사람들은 바른 분별력으로 선택합니다. 2독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믿을만한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면 못 믿을 것도 사람입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는 표현이 그것이지요. 믿을만 하다고 여겼던 사람이 오히려 배반하고 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도, 말없이 주님은 항상 내 곁에 계셨습니다.

  오늘도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내 앞에 제시됩니다. 만약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유혹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요. 게다가 그 유혹은 날을 세워 계속 파고듭니다. 그러나 그 유혹 속에서 참된 것을 붙잡으십시오. 그 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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