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월요일
시인 류시화씨가 얼마 전 새로운 시집을 냈습니다. 그 중에 ‘직박구리의 죽음’이라는 시인데요. 좀 길지만 이어지는 내용이기에 다 읽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나는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령 옆집에 사는 다운증후군 아이는 인간으로서 어떤 결격사유가 있는가..
그날은 그 해의 가장 추운 날이었다. 겨울이었고..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보니 그 아이가 서 있었다.
죽은 새 한 마리를 손에 들고..
늘 집에 갇혀 사는 아이가 어디서 직박구리를 발견했는지 모른다.
새는 이미 굳어 있었고 얼어 있었다.
아이는 어눌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뜰에다 새를 묻어달라고..
자기 집에는 그럴만한 장소가 없다고..
그리고 그 아이는 떠났다..
경직된 새와 나를 남겨두고 독백처럼.
눈발이 날리고 아무리 작은 새라도 언 땅을 파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흰 서리가 땅속까지 파고들어 가 있었다
호미가 돌을 쳐도 불꽃이 일지 않았다
아이가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다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아이는 신발 한 짝을 내밀며 말했다..
새가 춥지 않도록 그 안에 넣어서 묻어 달라고..
한 쪽 신발만 신은 채로..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을 하고서..
새를 묻기도 전에 눈이 쌓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인가.
무표정에 갇힌 격렬함.. 불완전속의 완전함..
너무 오래 쓰고 있어서 진짜 얼굴이 되어버린 가면..
혹은 날개가 아닌 팔이라서 날 수 없으나 껴안을 수 있음..
독서와 복음에 나오는 내용은 겉모습만 사람인, 실제로는 그 안에 괴물이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아합 임금이 욕심에 사로잡혀 자기 집 옆에 있는 포도밭을 뺏으려는 모습이나,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상대하겠다는 태도 말입니다. 앞의 시처럼 ‘너무 오래 쓰고 있어서 진짜 얼굴이 되어버린 가면’ 이란 표현처럼, 되고 싶어하는 나의 갈망에 사로잡혀 참된 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어라. 그리고 천 걸음 가자는 이에게 이천 걸음 가주어라.” 이 말씀을 들으며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은 어느 선에서 한계가 그어져 있는 지, 왜 당신이 말씀하신 초월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먼 지 봐야 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 만큼 내 줄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