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사도 28,16-31;요한 21,2-25
요사이 사건 때문에 불교계가 얼룩지긴 했습니다만 얼마 전만 해도 불교는 사람들에게 뭔가 만족을 주고 있었습니다. 음식만 해도 사찰 음식이라 해서 영양이 있고 맛도 깔끔하면서 다이어트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고요. 그들이 말하는 깨달음도, 멀리 있는 신을 찾기보다 자기 안에 있는 신을 만난다면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거기에 혹하여 ‘공동체 의식보다는 홀로 깨닫는 것이 더 좋지 않는가?’ 라면서 말하는 우리 신자들도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뭔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다른 종교를 폄하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그렇게 홀로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결과적으로 따지면 누구는 깨닫고, 누구는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깨닫지 못한 사람은 평생을 깨달았다는 그 누군가의 말을 따라들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데요. 참 힘들지요. 하지만 우린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뭔가를 알려주시며 시작하였기에, 깨달은 사람이건 아니건, 사람이라면 모두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린 어떻게 당신을 헤아려 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다다르게 되는데요.
오늘은 1500년 경, 수도생활을 하고 싶어 오라토리회를 창설한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입니다. 그들에게 생활규칙을 나눠주면서 독려했다는데요. 그 생활규칙이란 서원을 하거나 가지고 있던 재산을 포기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던 방식과 반대가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에 어리둥절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보면 어떨까 합니다. 자기의 현 위치에서 주님을 섬겨야 한다고 말입니다. 세상과 맞닿며 살아야 하기에에 절제와 조절은 할 수 있을지언정 완전히 세상 것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바오로의 말씀처럼 “자기 셋집에서 만 2년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에 관하여 가르쳤다.” 비록 가택연금 상태라 자유스럽지 못하였지만, 그 나름의 상황에서 복음적 삶을 살았기에 그는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의 탓, 환경 탓을 하기보다 지금의 현실에서 당신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