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성모신심미사

2012. 5. 4. 오후 1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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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신심 미사. 요한 복음 2장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 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몇 마디나 하는 지 모를 정도로 말을 많이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이 말, 이 언어라는 것도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고 합니다. 하나는 지시 정보적 언어입니다. 이는 말 그대로, 정보를 가르쳐주는 언어입니다. 네비게이션처럼 ‘이리 가라, 저리가라.’ 하며 지시하고 알려주는 기능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통교적 의미의 언어입니다. 이것은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입니다. 예를 들자면 “나는 너를 사랑한다.” 라든가 “용기를 내세요” “당신을 할 수 있어요” 따위의 표현이 그것입니다.. 언어가 이런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면 여러분은 하루 중에 지시 정보적 언어를 더 많이 쓰고 있습니까? 아니면 의미를 전달하는 통교적 의미의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까? 이 실험을,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가정에서 해보았는데요. 역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어느 주부는 아침에 자녀를 깨우는 것부터 시작하여 학교를 보내고 저녁을 차리기까지 ‘이거 해라’ 라는 말만 하고 있으니 자기 아이들이 엄마와 대화를 하지 않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엄마와 자녀의 관계는 과연 어떤 만남입니까?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사이이겠습니까? 오늘 성모님은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지니까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재미있게도 직접적으로 표현 않으시고 ‘주님의 아들이시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주세요.’ 라는 뜻으로 돌려서 표현하십니다. 자녀가 생각하고 알아서 잘 나아가게끔 판단을 기다리는 모습은, 지시적인 언어에서 오는 삭막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 사용하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제 때 잘 쓰여야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될 수 있듯이, 말을 할 때도 성모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예수님이 잘 받아들이실 수 있도록 표현했기에, 계획되지 않았던 기적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작은 표현 하나에서부터 기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변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시간을 만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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