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수요일. 사도 15,1-6; 요한 15,1-8
예전 어느 본당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할까 합니다. 요즘보다 더운 여름인 8월에 캠프를 갔을 때 일입니다. 다행히 그 장소에는 풀장도 있고 해서 중고등부 선생님들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서 프로그램을 지켜보니 과연 이 프로그램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을 물에 빠뜨려놓고 1시간 가량 이상을 프로그램 진행을 한답시고 놀게 하지도 못하고, 학생들을 풀장 벽에만 세워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학생들의 얼굴은 좋지 못했고, 원망의 소리가 높아질수록 선생님들은 자기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을 하나라도 더 진행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요. 아직 어린 청년들이라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진정 누구를 위한 캠프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독서를 들으며 과연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오늘 독서에 유다에서 온 어떤 사람들이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고 말해 파장이 일어납니다. 물론 유다인들에게는 할례가 중요한 문제겠지만, 다른 민족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민족의 전통일 뿐이지요.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의 여러 조항이 많습니다만 결국 한 단어로 귀결해 본다면 ‘사랑’ 입니다. 그런데 작은 조항 하나에 매달려 더 큰 것을 보지 못하게 되면, 결국에는 공동체가 와해되고 마는데요.
오늘 복음에 나온 “내 안에 머물러라” 는 말씀처럼 우리의 신앙은 결국 당신 안에 머물기를 잘 해야 합니다. 머물기란 다시 말해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효도와 견주어 본다면, 결국 어르신의 마음을 헤아릴 때 효도도 하느님의 마음도 알 수 있는데요. 이렇듯 주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알 때, 다음에 해야 할 행동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걸 못 읽으면, 그저 내가 세운 계획을 진행하기에만 바쁠 뿐인데요. 마치 부모님이 받고 싶은 선물은 따로 있는데 자식은 그저 저기가 드리고 싶은 선물을 내미는 꼴과 같겠지요. 우린 그 감각을 익혀야 합니다. 이 감각은 말로 설명되기 힘듭니다.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설명하지 않는 것은, 귀찮아서가 아니라 말해줘도 다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가 움직여 체득할 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의도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