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토요일. 사도 16-1-10;요한 15,18-21
예전에 연세 지긋한 어떤 신부님과 대화를 하던 중 제게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자네 누구누구 신부님 알지?” “예” “나는 말야. 도대체 이해가 안 되서 물어보는 건데.. 사람들이 그 신부님을 왜 미워하는 거야? 기도도 열심하고 자기 직무도 잘 하고 있는데 말야” 정말 그랬습니다. 그분은 그야말로 시계추처럼 정확하게 시간을 잘 지키고, 자기 직무에는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철저한 분이셨습니다. 그렇다고 성격이 싸늘하냐? 그것도 아닙니다. 좀 과묵한 경향이 있지만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하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분을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주위 사람들을 살펴본 결과, 사람들에게는 이런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철저히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어디 한 부분은 좀 어수룩해 보이길 바라고, 실수도 좀 하고, 자기보다 못한 무언가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칭찬을 해주기 보다는 오히려 미움으로 돌변하는데요.
오늘 당신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음을 알아라.” 예수님께서 열심히 사셨기에, 제자들도 열심히 살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 언짢았을 것입니다. 출신성분도 목수, 어부인, 자기보다 미천한 사람들이 바른 소리 한다고 말이지요. 트집을 잡아보려 하지만 그건 잘 안 보였고, 게다가 자기들은, 자기가 가르친 대로 살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화나고, 자기 자신에게도 화나고 있었습니다. 무지렁이 같은 제자들이건만 그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바를 알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스승의 삶을 보면서, 또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예수님처럼 살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제자들의 그런 노력을 보며 자신들이 그만큼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질투와 더불어 자기 한계를 보면서 미움으로 발전하는데요. 같이 무너지면 안심이라도 할 텐데 말이지요.
사막의 교부였던 에바그리우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발전을, 자신의 행복과 발전인 양 기뻐하며 바라보는 수도승은 행복하다.”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며 행복해 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