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금요일. 사도 15,22-31;요한 15,12-17
우리가 매일 자유롭게 사는 듯 여겨지지만 실상은 ‘법’ 이라는 굴레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이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반대로 옥좨는 것 같습니까? 저도 국가 안에서 살고 있는 국민이기에 국가정책을 반대하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법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인상을 갖는다면, 법을 좀 새로운 시각에서 봐야 할 텐데요. 노자 73장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늘의 그물은 코가 넓어서 성기어도 빠뜨리는 것이 없다.” 즉 사람이 만든 법은 너무 촘촘해서 물샐 틈 없어 보이지만 실은 언제나 빠져나갈 놈은 다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반대로 하느님의 법은 듬성듬성, 첨예하지 않게 보이기에 대단치 않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만 모두를 비추는 햇살은 죄가 있는 자가 없는 자나 모두 함께 비추어 주는데요. 이렇듯 자유로움 안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면서 예상보다 적은 것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만큼 자유로움 속에서 하느님의 얼, 바람, 숨을 느끼는데 중점을 두라는 말씀과 같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께 이런 시를 받았습니다. “사제여 너는 하느님 없이 무엇이며, 하느님과 함께 무엇이냐. 하느님과 함께 전부이고 하느님 없이 아무 것도 아니다.” 당신의 전체를 알려고 할 때, 마치 숲을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면 작은 것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함부로 규정하면, 내가 알고 있는 이웃을 단정내릴 때, 그 사람의 다른 면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고 맙니다. 내가 더 볼 수 있는데 안 보는 셈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다른 면을 봐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럼 다른 면을 보려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자유로움 안에서 모두를 비추어 주는 햇살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데요. 그럴 때 참된 계시가 어떤 것인지 볼 줄 아는 시각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종과 주인의 관계가 아닌, 친구라고 불러주는 주님의 모습을 뵈오며 참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길을 열어놔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주고 있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