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간 금요일. 예레미아 20,10-13;요한 10,31-42
예전에 어떤 본당에서 예비자 입교식을 했답니다. 이렇게 새로 들어오신 예비자들은 ‘신상명세서’ 라는 것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상명세서의 직업란에 ‘형사’ 라고 쓰여 있는 분이 있어서, 신부님이 그 분께 물어보았답니다. ‘아니 어떻게 오시게 되셨어요?’ 하니까, 그분의 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제가 20년간 강력계 형사로 있었는데요. 경찰서 잡혀 온 사람 중에 그동안 목사도 있었고 스님도 있었습니다만 신부님들은 없었길래 이렇게 천주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입교 동기가 다른 사람과는 달랐지만, 분명 우리들의 행동이 그분에게는 메시지로 다가왔던 모양인데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神)이라고 하였는데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우리나라에서 천주교를 믿는 신자수는 전국대비 10.5%, 서울시 신자만 13%라는 작은 비율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천주교 신자가 있다는 것만큼은 압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도 알고 있습니다. 비록 독서의 말씀처럼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면서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의 일을 통해 만나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직무요, 의무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저 세상의 표피적인 것에 매달릴 때, 오히려 하느님의 일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면, 당장에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우린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우릴 반대해도 그 일의 진실성만큼을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신자가 되기 위한 시간은 생각보다 늦을지라도,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20년간의 시간을 뚫고 입교한 그 형제처럼, 언젠가는 우릴 향해 손을 흔들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답송에 이런 후렴이 나옵니다. “곤경 중에 나 주님 불렀더니 주님이 내 목소리 들으셨네.” 우린 당신을 찾을 때 지치지 않습니다. 당신을 부를 때 외롭지 않습니다. 계속 힘차게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