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4 주간 금요일.
우리 본당만 해도 일 년에 세 번에 걸쳐 예비자 입교를 하고 있습니다. 예비자들이 교육을 받아 세례를 받는 과정은 보는 것만 해도 감동입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살았던 이들이 주님의 자녀로 거듭나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민감한 것을 발견합니다. 예비자들이 입교하여 교회활동을 하다가 어떤 문제에 대해 결정할 경우, 예전 자신이 배운 세상적인 방식을 그대로 교회로 끌고 들어와서 적용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강남 어떤 본당의 이야기입니다. 거긴 사업하는 사람도 많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많다보니 남성구역모임에서 제안을 하길, ‘우리 중에는 여러 직종에서 가르치는 직무를 갖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 재테크에 대한 교육을 시켜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이라는 발언을 성당에서 스스럼없이 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중지시켰지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탈바꿈 하여 세상을 살기보다 그저 현세에서만 머물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는데요.
오늘 독서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현세에서만 만족을 찾으려하고, 지금 좋으면 다 된다고 여기니, 주님이 어디를, 어느만큼 보시면서 당신의 길을 가려 하셨던가? 그들에겐 관심 밖입니다. 나하고는 크게 관계없다고 여기니까요.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복음에 나옵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 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 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가 이집트 피난 후 나자렛에 돌아오셨기에, 원래 고향이 구세주가 나실 베들레헴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냥 늘어놓고 있는데요.
살다보면 가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고가 터지면 이런 말을 합니다. ‘너 왜 그랬니?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잖아?’ 허나 혼자만 몰랐던 것이지요. 과연 우린 주님을 얼마만큼 안다고 여기고 있습니까? 그분이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하며 당신의 뜻을 찾으려 했는지 아십니까? 만약 모르신다면 그분의 방식으로 나의 삶을 찾아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