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화요일

2012. 3. 13. 오전 11: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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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3주간 화요일. 다니엘 3,25-43;마태 18,21-35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계획을 세워 실천해도 내가 하는 것이고, 사랑을 해도 내가 하는 것이고, 용서를 해도 내가 하는 것이라고요. 물론 행동하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니까 내가 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 행동을 해보면서 항상 잘 되었습니까?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남이 도와주지 않아서 못했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계획 세웠지만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지만 하지 못했고, 사랑도 용서도 그 누구도 하지 말라고 얘기한 사람이 없었는데도 하지 못했던, 그런 나를 보자는 것입니다. 그저 게으름으로 넘길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그 안에는 간절한 마음이 없었고, 주님 없이 그저 나 혼자 하려는 마음이 더 컸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오늘 베드로가 주님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 까지 해야 합니까?” 이 말뜻 안에는 이런 것이 숨어있겠지요. ‘내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해?’ 하는 거 말입니다. 같은 형제라지만 결혼을 하면 새로 생긴 자기 가족만 챙기느라 부모도 형제도 몰라라 하는 경우를 봅니다. 심지어 명절에도 다투니까요. 혹시 내 범위를 너머서는 내 차원을 너머서는 사랑을 해 보셨나요? 범위를 세워놓고 하는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하겠다는 것이니까요. 그러기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 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우린 차원을 너머서는 사랑을 목격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걸 체험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걸 보지 않으려 한다면 나는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란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오잖습니까? “이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얼굴을 찾으렵니다.” 한계를 느낄 때, 한숨이 쉬어질 때 얼굴을 들어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없었던 문제를 그분께 던지십시오. 그때 내가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가 어떻게 풀려나가는 지 보일 것입니다.

댓글 1

  • 2012년 3월 14일 오전 10:31

    차원을 넘어서는 사랑을 목격해야 하고 체험해야 하는 사람.. 누구도 방해하지 않은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고 용서도 하지 말라고 한 사람이 없음에도 하지 못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