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간 수요일. 마태오 20,17-28
뉴스를 보면 확실히 선거철이 다가오나 봅니다. 공천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낙천한 사람들의 광경이 벌어지니 말입니다. 무릇 그 자리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인데요. 그런데 그들이 너무나도 봉사를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공천을 받지 못했다고 반발하고 무소속 출마도 불사하겠다니 말입니다. 국민과 나라를 진정 사랑하는 모양이지요? ^^
오늘 복음에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엄마 하나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조릅니다. 분명 그 자리는 사형선고를 받아 십자가를 메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는 자리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는 질문에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응답합니다.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뜻일까요?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젊었을 때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하십니다. 공인의 삶이 그런 것이지요.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할 수도 없는 것 말입니다. 그럼 공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도덕경 3장에 보면 ‘뜻을 약하게 하라.’ 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더라도 해내겠다는 욕심이나 억지를 부리면 문제가 생긴다는 말인데요. 만약 “높은 이는 모든 이를 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는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는다면, 아무도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 삶은 분명 나이가 들수록, 직무와 책임이 맡겨질수록 자기 맘대로 하기 힘듭니다. 성당에서 신부님이 왕처럼 맘대로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받아들이는 신자들의 상태를 배려하며 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모두들 높은 사람이 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있다는 그들이 실제로 높아 보이지 않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요? 당신이 말씀하신 섬기는 이란 어떤 사람인지 잘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