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5주간 토요일. 열왕상 12,26-34; 마르 8,1-10
여러분이 이미 아실 법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예전 김수환 추기경님의 꿈이 신부님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연기 퐁퐁 나는 조그마한 집에 식구들과 된장찌개 끓여먹으며 살고 싶다고 자서전에 써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꿈을 실현시키고자 신학교 원감 신부님께 신학교를 나가고 싶다고 말하니까 그 외국신부님이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신부라는 건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고 싶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야!” 라면서 “당장 나가” 라고 불호령을 내렸답니다. 그러자 김 추기경님은 “신학교를요?” 하자 원감 신부님은 “아니 이 방에서..” 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기 싫었다는 그 분이, 끝내 당신의 사명을 잘 받아들이면서 추기경님까지 된 것을 누구도 불쌍한 인간이었다고 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명의식을 잘 받아들였음을 높이 사고 있는데요. 예전 저도 조그마한 체험이 하나 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앞둔 자매님을 뵈러 병실에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환자를 포함하여 그 가족들, 교우분들이 모두 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병자성사 해 줄 분을 기다리려고 말입니다.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을지언정 성사는 아무나 못하기에 저만 기다리고 있던 그들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고 그 체험으로 말미암아 저도 더 열심히 살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요.
오늘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것도 문제이지만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산당의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그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직무를 맡겨 산당의 제사가 될 수 있게 하였다.” 라고요. 이제껏 교회가 위기에 놓였을 때도 누구나 사제로 임명한 적은 없었습니다. 예전 우리 교회사에도 보면 처음에 신부님이 없어서 서로 사제를 시켰던 ‘가성직제도’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만 이는 몰라서 생긴 해프닝이었고, 그 후 몰래 외국에서 신부님을 모셔왔을 때 상황은, 마치 복음에 나온 배고픈 어린 양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랬던 이 교회가 어제 서품식이 있었습니다. 이제 서울시만 해도 220개의 본당이 넘어서고, 800명에 가까운 신부님들이 있습니다만 이젠 교회나 사제가 많다고 여기다보니 귀중함을 모르는 시대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목마르고 배고픈 교인들은 너무나 많고, 그러기에 교회가 할 일도 많습니다. 이 시대에 더 많은 일꾼을 보내 주십사고 목 놓아 청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