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 화요일. 성 치릴로와 메토디도 기념일

2012. 2. 14. 오후 4: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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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야고보 1,12-18;마르 8,14-21

요즘 들어 이슈화 되고 있는 단어를 꼽아본다면 바로 ‘소통’ 이라는 단어입니다. 다른 세대, 다른 공간에 있었던 사람끼리 하나가 되기 위해 대화와 몸짓을 통해 무언가를 이뤄내는 작업은, 예전에는 그저 알아서, 눈치껏 해왔던 것과 달리, ‘당신의 의견을 직접 보여주세요, 들려주세요, 그래야 내가 알아듣지요..’ 하는 것 같아 보기 좋은데요. 그런데 무언가를 보여주었는데도, 알려주었는데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이 그런 장면입니다. 제자들이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수군거립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고요. 그러면서 빵을 오천 명에게 먹였을 때, 사천 명에게 먹였을 때, 몇 바구니가 남았느냐고 물으십니다. 바구니에 빵이 남았던 것은 기억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기적을 보았어도 그 기적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모르는 경우 말입니다.
 대부분 교우들이
‘이 정도는 있어야 사람구실 하면서 살 수 있다.’ 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이 정도마저도 사라진 상태라면, 그 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직 그런 경우가 닥치지 않아 잘 모르시겠습니까? 우리가 진정 잘 살기 위해서는 ‘포기’를 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것이다.’ 하고 말하지만 우리는 좀 다릅니다. 포기는 무한한 하느님 사랑과의 접촉의 시작상태입니다. 스스로 포기한 상태일 때 그 분의 실체를 깨닫고 그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빵이 없었을 때 사람들의 상황은 이랬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 밖에 없습니다. 주님만이 구원하여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뭔가가 주변에 있으면 주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주변에 눈을 돌립니다. 그러면서 당신과는 거리는 멀어집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주변의 사물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우리의 삶 안에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향력이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멀게 만들고, 기적이 무슨 뜻인지 모르게 되는데요.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동안 나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이젠 알아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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